패티 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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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m 모바일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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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김혜자''' 본명으로 국무총리배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입상하여 첫 데뷔하였고 3년 후 [[1959년]] 미8군 무대에서 가수 데뷔하였다. 이 시기에 지은 '''패티'''라는 예명은 미국 가수 [[패티 페이지]]와 같은 명가수가 되고 싶다는 뜻에서 지은 것이다. 패티김의 등장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지켜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스타가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철저한 자기 관리로 어떻게 새로운 시작을 이끌어 가는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해방 이후 최초로 일본에 진출하고 이어 미국 무대에도 선 패티김은,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가수]] 이외에도 [[뮤지컬 배우]]와 [[영화 배우|영화배우]]로도 활동하였으며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함께 따라다니는 가수이자 대중음악계의 이정표와 같은 존재로서 활동했다.
 
〈초우〉, 〈이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사랑은 생명의 꽃〉, 〈서울의 찬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부른 그녀는 2012년 은퇴를 선언하고 1년간의 이별 콘서트 투어를 통해 전국의 팬들과 이별을 고한 뒤, 2013년 10월 26일 55년 가수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무대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