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택 (소설가):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Namobot (토론 | 기여)
→‎생애: 봇: 인용 틀 변수 이름 수정
Namobot (토론 | 기여)
봇: 인용 틀 미사용 변수 삭제
22번째 줄:
|출판위치=서울
|id=ISBN 8991508189
|페이지=428쪽}}</ref> [[한성부]] 출생이며 원적지는 [[평안북도]] [[의주군|의주]]이다.
|페이지=428쪽
|꺾쇠표=예
}}</ref> [[한성부]] 출생이며 원적지는 [[평안북도]] [[의주군|의주]]이다.
 
[[일제 강점기]]에 《[[매일신보]]》, 《[[문장 (잡지)|문장]]》 기자를 지내면서, 사소설, 심리소설 위주로 약 4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문단 데뷔작은 [[1936년]] 발표한 〈촉루〉이다. 작가의 자의식이 반영된 지식인 청년이 주인공인 〈촉루〉는 〈미로〉(1939)와 〈여수〉(1941) 연작으로 이어져 정인택의 대표작이 되었다.
줄 36 ⟶ 34:
|issue = 67호
|쪽=123~148쪽
|url=http://www.artnstudy.com/zineasf/Nowart/penitence/lecture/03.htm}}</ref>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꺾쇠표=예
}}</ref>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이상 (작가)|이상]]의 연인으로 알려진 [[권영희]]와 결혼했고, [[한국 전쟁]] 중 가족과 함께 월북하였다.<ref>{{뉴스 인용
줄 54 ⟶ 50:
|출판위치=서울
|id=ISBN 8976962583
|페이지=80쪽}}</ref> 기록이 있을 뿐 문단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가게 된 정확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페이지=80쪽
|꺾쇠표=예
}}</ref> 기록이 있을 뿐 문단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가게 된 정확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월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인택은 병사하였다. 권영희는 몇 년 후 정인택의 또다른 친구인 월북 작가 [[박태원 (1909년)|박태원]]과 재혼했으며, 박태원 슬하에서 자란 정인택의 차녀 [[정태은]]이 북조선의 유명 작가가 되었다.<ref>퍼슨웹, [http://www.personweb.com/sub5/gubo/01.html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반백(半白)의 아들 - 소설가 구보씨의 아들 박재영씨 인터뷰], 2006년</ref> 정인택의 월북 이후 행적 및 사망년도는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6년]] 이산가족 상봉으로 북조선에 거주하는 누나를 만난 박태원의 차남 박재영이 자신의 블로그<ref>[http://blog.daum.net/danielpak20/ 행복한 꿈과 삶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다음 블로그)</ref> 를 통해 전해 들은 소식을 밝히면서 공개되었다.
줄 68 ⟶ 62:
|출판위치=서울
|id=ISBN 8952104617
|페이지=859쪽}}
|꺾쇠표=예
}}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