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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골매]]
*[[조용필]]
 
==조용필과 핑크 플로이드==
조용필과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조용필은 1집을 발표하기 전부터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그 영향은 3집부터 5집까지 그의 앨범에 깊게 반영되어있다.
 
물론 1집의 타이틀 곡 '창밖의 여자'도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이 짙게 베어있는 곡이다. 신세사이저로 시작해서 곡 전체에 깔리는 이 곡은 핑크 플로이드를 곧 바로 느낄 수 있다. 진중한 느낌의 기타솔로 역시 그러하다. 3집에서 5집으로 가면 갈수록 그들의 화려하고 웅장하면서 충만한 느낌의 사운드로 채워가고 있다
조용필은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하에 있었다.
 
 
 
그들의 사운드를 그가 구사하고자 한다는 것은 조용필의 음악이 본질적으로 록을 지향한다는 말이다. 즉, 그가 하고자 하는 록은 웅장하고 메시지 강한 깊이있는 사운드인 것이었다. 바로 그가 구사했던 신세사이저 올겐, 기타, 베이스 등의 사운드는 그것은 핑크 플로이드에 영향받은 것들이다.
조용필은 여러 인터뷰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했다.한 인터뷰에서는 좋아하는 음악인으로서 REO 스피드웨건과 핑크 플로이드를 지목하기도 했다. 아래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들을 들어보자.
 
 
 
one of these days
 
shine on you crazy diamond
 
run like hell
 
 
 
 
 
'one of these days' 에서는 '못찾겠다 꾀꼬리'의 모태를 찾을수있으며 'shine on you crazy diamond'의 사운드는 조용필 1집에서 5집까지의 음악에 기본 베이스가 되는 곡이라는 것을 알수있다. 이곡은 그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곡 이다.
 
또한 그들의 대표곡인 'the wall'의 기타사운드도 조용필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기타 만큼이나 키보도의 웅장하고 화려한 세계를 사랑한다. 그래서 그냥 달리는 심플한 록 보다는 플로이드 같은 사운드 메시지가 충만한 록을 좋아한다.
 
(리뷰, 조용필VS강헌 가왕 조용필)
 
 
 
조용필의 5집까지의 웅장한 사운드는 그가 말하는 핑크 플로이드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는 핑크 플로이드를 얘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의 얘기이기도 하다.
 
 
 
iii) 1집 창밖의 여자(80년3월) side A
 
창밖의 여자(배병숙 사/조용필 곡)
 
돌아와요 부산항에(황선우 작사, 곡)
 
잊혀진 사랑(김중순 사/김희갑 곡)
 
돌아오지 않은 강(임택수 작사,곡)
 
정(조남사 사/김학송 곡)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오사랑 사/허영철 곡)
 
side B
 
단발머리(박건호 사/조용필 곡)
 
한 오백년(민요)
 
대전 브루스(최치수 사/김부해 곡)
 
너무 짧아요(윤철 사/조용필 곡)
 
슬픈 미소(유현종 사/조용필 곡)
 
(군가)너와나
 
 
 
79년 조용필은 해금을 즈음해서 지구레코드와 10년 전속 계약을 맺는다. 한해에 앨범 하나씩이라는 불문율로 인해 그는 10년동안 최소한 10개의 앨범을 내어야 했다.
조용필은 지구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80년 3월까지 녹음을 마친다. 이것은 그가 해금을 기다리며 1집에 대한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집은 그가 반드시 상업적으로 성공해야하는 앨범이었으며 성공을 위해 다양한 음악적인 고려를 하고있음을 알 수 있다.
 
 
 
- 윤시내의 '열애'와 '창밖의 여자'
 
 
 
'창밖의 여자'는 윤시내의 '열애'를 조용필 스타일로 만든 곡이다.
79년도에 윤시내는 가요제 스타일의 곡 '열애'로 대히트를 했다. 이곡의 핵심은 윤시내의 핏발서는 가창력과 현을 주로쓰는 팝 오케스트라 편곡의 스케일이 큰 곡이라는 점이다. '열애'는 이후 80년대초 주류성인가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큰 히트곡이던 '창밖의 여자', '잊혀진 계절', '사랑의 미로', 'J에게' 등의 사운드와 곡의 스타일은 모두 '열애'를 바탕으로 한것이었다.
 
 
 
조용필도 당연히 가장 주류이던 스타일을 지나칠 순 없었으며 '창밖의 여자'를 통해 가요계의 주류스타일에 접근했다. 당시의 이런 곡들은 대부분 현이나 피아노에 바탕을 둔 사운드였으나 조용필은 'shine on you crazy diamond'에 쓰인 스타일의 신세사이져를 현대신 과감하게 도입했다. 또한 독특한 핑크 플로이드 스타일의 기타 솔로도 선보였다.
조용필은 이때에 '창밖의 여자'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80년대 초만 해도 생악기가 아니면 안됀다는 편견이 지배적이었지만 나는 신시사이저의 전자음악이나 ..(리뷰)
 
 
 
80년대 초에 '창밖의 여자' 같은 스타일의 노래는 바이올린 선율이 깔리는 게 기본이었지만 조용필은 그것을 거부하고 신세사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주1)
그리고 대중들은 그 사운드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그들이 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열애(윤시내)
 
잊혀진 계절(이용)
 
사랑의 미로(최진희)
 
J에게(이선희)
 
 
 
'사랑과 평화', '들고양이들', 조용필 등 소수만이 신세사이져 위주의 사운드를 선보였다.
그들은 당시 최첨단의 사운드를 구사하는 몇 안되는 음악가들 이었다. 첨단 악기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것은 악기가 엄청난 고가이고 귀한데다 당시의 아날로그 신세사이저는 후에 보편화된 FM방식의 신세사이저 처럼 사용하기 편리한 악기가 아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 '단발머리'
 
 
 
'단발머리'는 사랑과 평화가 보여줬던 최이철의 트레이드마크인 와우와우를 쓴 펑키풍의 리듬기타사운드와 김명곤 식의 화려한 신세사이저 편곡이라는 가요의 가장 대표적인 펑키스타일을 도입한 곡이다. 조용필은 여기다가 일렉트릭 드럼의 멋진 사운드를 선보였다.
 
'단발머리'의 첫 부분의 신세사이져 멜로디와 뒤에 곧 바로 등장하는 일렉트릭 드럼의 소리는 전국민을 열광시켰다. 그것은 80년대를 맞으며 모든사람들이 갈망하고 꿈꾸어왔던 바로 그 사운드였다. 그리고 조용필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것을 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는 모두 70년대 막바지에 만든 곡이다. 전자가 과거와 기존의 세대들의 갈망을 대변한다면 후자는 이제 시작하는 미래와 다음세대의 갈망을 담으려고 했다.(중략)
이에 비하면 '단발머리'는 하나로 가는 음악이다. 그러나 그냥 가는데 나무가 무수히 많다. 나는16마디에서 A-B-A로 반복하는 당시 우리 대중음악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첫앨범으로 간주하는 80년 앨범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원하고 있었음을 절감할수 있었고, 이제는 마음대로 만들고 펼쳐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80년대초만 해도 생악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편견이 지배적이었지만 나는 신세사이져의 전자음악이나 '단발머리'에서 사용한 메이저 세분같은 당시로선 낯선 코드를 과감하게 썼다. 하지만 그것은 60년대말에서 70년대 말에 이르는 10년간의 음악 훈련의 축적물일 뿐이다. 내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의 이면엔 음악까지 장악하고 있는 통행금지 시대에 대한 분노가 암묵적으로 들어있다고 본다.(리뷰)
 
 
 
- 그밖의 곡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조용필이 무척 싫어하는 노래였다. 녹음할 당시에도 그 노래는 기억하기 싫은 노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상업적 성공을 위해 1집에 그 노래를 넣었다. 어쨋던 이 곡은 1집을 대표하는 노래였다.이 노래는 원래 트로트고고로 편곡된 곡이었다. 1집에는 트로트펑키로 편곡되어 있고 신세사이져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이때에는 펑키가 최 첨단이고 가장 신나는 리듬이었다. '잊혀진 사랑'도 트로트곡이며 역시 펑키스타일로 편곡했다.
 
 
 
'너무 짧아요'는 트로트곡이지만 다른 곡에 비해 가볍고 경쾌하다. 음악을 들어보면 들고양이 식으로 편곡되어있음을 알수있다.
'한오백년' 역시 조용필을 대표하는 곡이며 모두 알다시피 민요이다. 민요는 당시 가요계에서 주류스타일중의 하나였으며 조용필의 입장에서는 외면할 수 없는 장르였다. 그러나 이 민요를 조용필은 천편일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핑크 플로이드에 영감을 얻은 시세사이져 선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조용필은 이 곡에서 득음단계의 목소리로 열창을 보여주어 사람들을 감명시켰다. 그는 그 이후에도 국악과 가요를 접목하는데 많은 노력을 했다.
 
 
 
조용필은 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얼마지 않아 대마초 파동으로 가수활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각고의 노력끝에 목소리를 만들어내고 80년 음반을 내었다. 그에게는 무명의 10여년의 정리하는 도약의 앨범이 되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의 자신의 음악적 노력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더불어 성공을 염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상업적 성공과 음악적 성취 양자를 조화시키려고 했고 그것은 멋지게 성공했다.
 
 
 
10.26으로 마감된 유신통치와 함께 들려온 조용필의 새로운 사운드는 사람들의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갈망과 일치되었고 조용필은 그의 노래를 통해 갈망을 정확하게 표현해 내었다. '창밖의 여자'가 잠들어야 할 어두운 과거를 노래 한 것이었다면 '단발머리'는 80년대라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 설레임을 표현한 것이었다.
 
 
 
결국 80년대는 조용필의 새로운 음악과 함께 시작되었고 스스로 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가 되었다. 이제 그 성공을 바탕으로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제 그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좋아하게 되었다.
 
 
 
대마초 파동이 없었더라면 80년대의 나는 없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정말이지 애증이 교차하는 노래이다. 그땐 이노래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어디 공연가면 전부 외국노래만 불렀다. 하지만 이 노래는 내 운명을 바꾸어버린 노래가 아닌가? 3년이 지나 박대통령이 죽고 나서 다시 컴백 했을때 그때서야 이노래가 좋아졌다. 왜? 미우나 고우나 내 데뷔곡이니까. (리뷰)
 
 
 
창밖의 여자(배명숙 사/조용필 곡)
 
단발머리(박건호 사/조용필 곡)
 
단발머리LIVE(영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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