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목왕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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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 김씨]] [[김제남 (1562년)|김제남]](金悌男)과 [[광주 노씨]]의 딸로, 1584년 12월 15일(음력 11월 14일)에 태어났다.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懿仁王后)가 사망한 뒤 1602년에 왕비로 간택되어 19세의 나이로 51세의 [[선조]]와 가례를 올렸다. 1603년 [[정명공주]](貞明公主)를,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大北)이 집권하였는데, 이들은 왕통의 취약성을 은폐하기 위해 인목왕후의 아버지 [[김제남 (1562년)|김제남]]을 사사(賜死)하고 이어 [[영창대군]]을 폐서인시킨 뒤 방에 뜨거운 불을 때고 음식을 끊어 가두어 살해시켰다살해하였다. 한순간에 친정이 풍비박산나고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인목왕후 역시 폐비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복호되어 [[대왕대비]]가 되었다.
 
[[1632년]] 8월 13일(음력 6월 28일) 49세를 일기로 죽었으며, [[선조]]와 [[의인왕후]]와 함께 [[경기도]] [[구리시]]의 [[목릉 (조선)|목릉]](穆陵)에 묻혀 있다. 인목왕후의 서궁 유폐 생활은 그녀의 궁녀로 추정되는 작가가 쓴 《[[계축일기]](癸丑日記)》에 전해진다. [[금강산]] [[유점사]]에 인목왕후가 친필로 쓴 《보문경》일부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