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 조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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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과 ==
일본 제국은 [[임오군란]] 때의 [[피해보상]]을 요구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공사를 파견, 유력한 육해군의 시위 아래 [[제물포]]에 상륙했다. 일본의 출병 소식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운 것은 [[청나라]]였다. 청나라는 [[영선사 (사절단)|영선사]] [[김윤식 (1835년)|김윤식]]의 의견을 청취하고 속방(屬邦)속국을 보호를보호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오장경]](吳長慶)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재빨리 출동케 했다. 이때 청나라에서는 사태가 확대되는 것을 우려해 일본 공사를 자중시키는 한편, 조선 정부의 태도를 완화시켜 양국 사이에 제물포에서 회담을 열어 제물포 조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조선 정부는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고 일본 공사관에 일본 '''경비병'''을 주둔시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