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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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건설 시절 ===
학생운동으로 복역한 전과 때문에 취직이 어렵게 되자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정부의 부당한
입사 1년차 때 [[태국]]의 파타니와 [[말레이시아]] 국경 나라티왓을 잇는 고속도로 공사 당시 폭도들로부터 금고를 지킨 일화로 입사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대리로 승진한 것을 시작으로 29세 이사에 이어 입사 12년만인 [[1977년]] 35세의 나이로 현대건설의 사장이 되었으며, [[1988년]]에는 회장이 되었다. 현대그룹 재직시절 세계에서 3번째로 긴 말레이시아 [[피낭 대교]](연륙교)를 건설하고 [[이라크]] 화력발전소를 짓는 등 세계 각지에서 사업을 진행하였다.<ref name="sugeun" /> 뿐만 아니라, 석유파동 당시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 수주했던 [[주베일 항만공사]]는 우리나라에 막대한 외화를 가져다주며 석유파동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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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울대공원]]의 근무인원을 관람객이 많은 주말과 휴일에 더 늘리고, 미술관 등의 관람시간도 직장인 퇴근시간 이후로 연장했다. 이 과정에서 “평일 관람시간을 늘리고, 주말 개장을 하라”고 지시하는 게 아니라 “저녁에 박물관 좀 구경합시다. 주말에 가도 볼 수 있습니까”라고 돌려서 신호를 보냈고, 공무원들이 알아서 그 뜻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재직 당시 5조원이던 서울시의 부채를 2조원으로 줄였다고 했으나, 그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한나라당 경선 도중에 박근혜 후보측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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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이명박 정부}}
=== 경제 ===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시장 중시 경제정책인 이른바 《MB노믹스(nomics)》라 불리고
=== 외교, 통일, 안보 정책 ===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 외교, 안보 정책도 경제정책과
==== 대북 정책 ====
대통령의 대북정책 공약은 당선 후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을 폐기해야만 본격적인 남북 경제교류가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한 것 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에 나서면 대북 투자를 통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10년 후 3000달러로 끌어올린다는 ‘비핵ㆍ개방ㆍ3000 구상’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400억달러 규모의 국제협력기금 조성에 나서기로 한 것은 북한에게 핵 폐기의 대가로 받을 수 있는 선물을 구체화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ref>세종연구소 이상현 안보연구실장</ref>고 평가 하는 측도 있고 야당시절 반복해 외쳤던 주장과 구호에 익숙한 채 구체적 해법과 접근방식 없이 남북관계를 대할 경우 긴장과 대결만 확대 재생산할 가능성이 높다고<ref>경남대학교 김근식 교수</ref> 주장하는 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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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훈 ===
*1982년 체육훈장 백마장
*1984년 국민훈장 석류장
*1985년 금탑산업훈장
*1986년 체육훈장 거상장
*1998년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조선일보)
*1999년 20세기한국을 빛낸 30대 기업인(전국경제인연합회, 매일경제)
*2005년 2005 세계의 인물 대상(영국 파이낸셜 타임즈 그룹 fDi 매거진)
== 가족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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