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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섬'''(慶暹 , [[1562년]] ~ [[1620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청주 경씨|청주]](淸州). 자는 퇴부(退夫), 호는 삼휴자(三休子)·석촌(石村)·칠송(七松).
 
본관은 [[청주 경씨|청주]](淸州)이다.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94년 홍문관정자를 제수받았고, 1598년 진주사(陳奏使)의 정사(正使)인 최천건(崔天健)을 따라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사헌부의 지평·장령과 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자는 퇴부(退夫)이며 호는 삼휴자(三休子)·석촌(石村)·칠송(七松)이다.
 
[[1607년]] 통신사 부사로 정사 [[여우길]]과 함께 [[임진왜란]] 후 첫 사절로 일본에 다녀왔다.
1601년 남원부사가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의해 피납된 조선인들을 쇄환해 온 공로가 있다.
 
관직은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1607년 홍문관교리로서 통신사 여우길(呂祐吉)과 함께 통신부사가 되어 임진왜란 후 첫번째 사절로 일본에 건너가 국교를 다시 열게 하고 임진왜란 때의 포로 1,340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1618년(광해군 10) 호조참판이 되고, 1619년 장례원행판결사(掌隷院行判決事)가 되었다. 학문이 뛰어나 삼사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부제학]]과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 가족 ==
* 증조부 : 경세청(慶世淸)
** 할아버지 : 경혼(慶渾)
*** 아버지 : 경시성(慶時成)
*** 어머니 : 박난영(朴蘭榮)의 딸
 
[[분류:조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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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조선의 정치인]]
[[분류:임진왜란]]
[[분류:문과급제과거 급제자]]
[[분류:청주 경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