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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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君主論, {{llang|it|Il Principe}} {{IPA-it|il ˈprintʃipe|}})》은 이탈리아의 외교관이자 [[정치철학|정치철학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저술한 16세기의 정치학 저술이다. 마키아벨리의 서한으로 보건데 De Principatibus(군주국에 관하여)라는 라틴어 제목의 한 소책자가 1513년에 이미 널리 읽히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인쇄본은 마키아벨리가 죽고 5년 뒤인 1532년까지 출간되지 못했다. [[메디치 가문|메디치 가]]의 [[교황 클레멘스 7세]]의 허락으로 출간될 수 있었는데, '"그 훨씬 이전에, 사실상 필사본 군주론의 첫 등장 이래로 그의 저서에 관해 많은 논란이 일었다'."<ref>{{Harvtxt|Bireley|1990|p=14}}</ref>
 
비록 [[군주의 거울]](mirrors for princes) 형식의 고전적 저술처럼 쓰였지만, 이전과는 사뭇 다른 형식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다른 르네상스 작품들의 출판 이래로 점차 통용되는 추세였던 라틴어보다는 부분적이나마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로 쓰여졌기 때문이다.<ref name="ITALIAN VERNACULAR">{{cite web|url=http://vlib.iue.it/carrie/texts/carrie_books/gilbert/06.html |title=Italian Vernacular Literature |work=Vlib.iue.it |accessdate=2012-01-09}}</ref><ref>{{Harvcoltxt|Gilbert|1938}} emphasizes similarities between ''The Prince'' and its forerunners, but still sees the same innovations as other commentators.</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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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신생 군주국 (1 ~ 2장) ===
군주론은 앞으로 다루어질 주제를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첫 문장에서 마키아벨리는 '"공화적이건 전제적이건 모든 형태의 최고 정치 권력 조직체'"를 중립적으로 포괄하기 위하여 '[[국가]](state)'<ref>이탈리아어로 'stato'.</ref>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어떻게 국가라는 단어가 르네상스 시대에 이러한 근대적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는 마키아벨리의 저서 중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졌던 비슷한 문장과 함께 많은 학문적 논의의 주제가 되어 왔다.<ref>{{Harvtxt|Guarini|1999|p=30}}</ref>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에 대해 다른 곳에서 저술하였다고 언급하면서, 군주론은 군주국에 대한 글이 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사실 그는 실질적으로 공화국 또한 많은 힘을 가졌으며 군주국의 한 유형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더 중요한 건, 덜 세태적이게도 그는 세습 군주국으로부터 신생 군주국을 구별하고 있다.<ref name=Ch1>{{Citation|last=Machiavelli|url=http://ebooks.adelaide.edu.au/m/machiavelli/niccolo/m149p/chapter1.html/|chapter=Chapter 1|title=The Prince|publisher=Constitution.org |accessdate=2010}}</ref> 그는 2장에서 세습 군주제는 통치하기 용이하다고 말하며 '''짤막하게''' 세습 군주제를 다루고 있다. 세습 군주에게 있어서 '"군주가 상식밖의 사악한 비행으로 미움을 사지 않는 한, 신민들이 자연히 그를 따를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사리에 맞다'"는 것이다.<ref name=Ch2>{{Citation|last=Machiavelli|url=http://ebooks.adelaide.edu.au/m/machiavelli/niccolo/m149p/chapter2.html/|chapter=Chapter 2|title=The Prince|publisher=Constitution.org |accessdate=2010}}</ref> 일반적으로 이러한 저작물의 유형은 오직 세습 군주국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harvtxt|Gilbert|1938|pp=19~23}}는 1장과 2장의 독특함은 군주를 위한 조언의 전례와 대조적으로 '"관습에 저항함으로써 권력을 취득해야 하는 통치자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한 계획적인 의도'"라고 서술하였다. 그는 마키아벨리가 그의 경험과 더불어 [[타키투스]]의 영향을 받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뚜렷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러한 정권 형태의 범주화는 '반아리스토텔레스 주의'<ref>{{Harvtxt|Gilbert|1938|p=19}}</ref>라고 불릴 뿐만 아니라 예를 들자면 1인 군주, 과두제 집권층, 혹은 민주정에서 사람들에 의해 통치되느냐에 따라 정권을 구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에서 발견되는 전통적인 범주화에 비하면 분명히 간단하다.<ref>{{Harvtxt|de Alvarez|1999|p=9}}</ref> 마키아벨리는 예를 들어 군주국과 독재 국가 간의 구분과 같은 바람직한 형태와 비도덕적 형태 간의 고전적 구분 또한 다루지 않았다.
 
반면에 [[크세노폰]]은 그의 저서 [[키루스의 교육]] 도입부에서 통치자의 형태에 따른 정확히 일치하는 구분을 사용하는데, 거기서 그는 인간을 통치하는 방법의 지식에 대해 거론하면서 그의 표본이 되는 군주, [[키루스 2세]]는 '"자신의 권좌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거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 왕관을 손에 넣은 다른 모든 왕들'"과는 매우 다르다고 하였다.<ref>Xenophon, ''Cyropaedia'',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3Atext%3A1999.01.0204%3Abook%3D1%3Achapter%3D1%3Asection%3D4 1.1.4]</ref>
 
마키아벨리는 신생 군주국이라는 주제를 복합 군주국과 전적으로 새롭게 생긴 군주국의 두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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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헌정사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 군주론은 피렌체를 통치하는 메디치 가문의 일원이자 [[로렌초 데 메디치|대인 로렌초]](Lorenzo the Magnificent)의 손자인 [[로렌초 2세 데 메디치|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Lorenzo di Piero de' Medici)에게 헌정되었다. 그것은 마키아벨리의 개인적인 서신을 통해 알 수 있다. 메디치 가문이 재집권하고 몇 달 후에는 마키아벨리의 체포, 고문, 추방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서신은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 재집권한 이듬해에 쓰여졌다. 군주론의 헌정은 [[프란체스코 베토리]](Francesco Vettori 군주론이 인정되기를 바랐으며 메디치 가문에 추천을 했던 마키아벨리의 친구)와 오랫 동안 논의되었다. 원래 그 책은 어린 로렌초의 삼촌이었던 [[느무르 공작 줄리아노 데 메디치|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ano di Lorenzo de' Medici)에게 헌정될 예정이었으나 그는 1516년 사망하고 만다.<ref>{{Harvtxt|Najemy|1993}}</ref> 출간되기 전까지 군주론이 메디치 가문의 어느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았는지는 확실치 않다.<ref>{{Harvtxt|Dent|1995|p=17}}</ref> 마키아벨리는 그 내용을 글을 통한 것만이 아니라 독특하게도 실제 경험을 통한 군주의 본질과 '위인들의 처신'에 관한 그의 지식의 꾸밈 없는 요약이라고 서술하였다.<ref name=Let>{{Citation|last=Machiavelli|url=http://ebooks.adelaide.edu.au/m/machiavelli/niccolo/m149p/|chapter=Dedication|title=The Prince|publisher=Constitution.org |accessdate=2010}}</ref>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논한 바람직한 정치적 행위의 종류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이었는데 그러한 부도덕함은 여전히 만만찮은 논의의 주제이다.<ref>{{Harvtxt|Fischer|2000|p=181}} says that some people "might hold Machiavelli to some extent responsible for the crimes of a [[Vladimir Lenin|Lenin]], [[Adolf Hitler|Hitler]], [[Mao Zedong|Mao]], or [[Pol Pot]], who had learned from him to excuse the murder of innocents by its supposed benefits for humanity." {{Harvtxt|Strauss|1958|p=12}} writes that "We shall not hesitate to assert, as very many have asserted before us, and we shall later on try to prove, that Machiavelli's teaching is immoral and irreligious."</ref> 비록 그것이 군주에게 압제하는 방법을 조언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일반적으로 자유로운 공화정을 원했다고 생각된다.<ref>For example {{Harvtxt|Strauss|1958|p=182}}: "Machiavelli's book on principalities and his book on republics are both republican."</ref> 몇몇 논평가들은 그가 지도자의 부도덕하고 죄악이 되는 행위를 수용하는 것을 그가 이탈리아의 끊임 없는 정치적 분쟁과 불안정한 정국의 시대에 살았다는 것, '"개인의 욕구와 인민의 빈곤을 묵살할 뿐만 아니라 혁신, 진취성, (과학적)의문을 인과관계로 질식시키는(지금은 우리가 본성을 통제하는 것을 용인하는)'", 중세 가톨릭의 '고전적 [[목적론]]'의 통제를 그가 완화시키는 것으로서 다수의 '행복, 평등, 그리고 자유'를 증대시켰음을 주장하며 옹호한다.<ref>{{Harvtxt|Fischer|2000|p=181}}</ref>
 
다른 한편으로 {{Harvtxt|Strauss|1958|p=11}}는 '"만일 우리가 마키아벨리는 근본적으로 애국자 혹은 과학자라 인정해야만 할지라도, 우리는 그가 악의 전파자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ref>Concerning being a scientist, {{Harvtxt|Strauss|1958|pp=54~55}} says that this description of Machiavelli as a scientist "is defensible and even helpful provided it is properly meant" because ''The Prince'' "conveys a general teaching" and only uses specific historical facts and experience as a basis for such generalizing. On the other hand {{Harvtxt|Strauss|1958|p=11}}: "Machiavelli's works abound with "value-judgments". Concerning patriotism {{Harvtxt|Strauss|1958|pp=10~11}} writes that "Machiavelli understood it as collective selfishness." It is Machiavelli's indifferent "comprehensive reflection" about right and wrong, which is "the core of Machiavelli's thought," not love of the fatherland as such.</ref> 뿐만 아니라 마키아벨리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만큼 사려깊고, 그의 사리에 맞는 친구에게 그것을 시인할 만큼 너그럽다'."<ref>Much of Machiavelli's personal correspondence with other Florentines is preserved, including some of the most famous letters in Italian. Of particular interest for example, are some of his letters to [[Francesco Vettori]] and [[Francesco Guicciardini]], two men who had managed to stay in public service under the Medici, unlike Machiavelli. To Guicciardini for example he wrote concerning the selection of a preacher for Florence, that he would like a hypocritical one, and "I believe that the following would be the true way to go to Paradise: learn the way to Hell in order to steer clear of it." (Letter 270 in {{Harvcoltxt|Machiavelli|1996}})</ref>
 
마키아벨리는 [[관념론|이상주의]]가 아닌 [[현실주의]]의 필요를 강조했다. 군주론에서 그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윤리적, 정치적 목적을 설명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되려는 자는 저절로 영예와 명예를 목표로 삼는다는 점을 당연시 했다. 그는 이러한 목표를 지도자의 '[[덕|역량]](virtue)'과 '사려분별(prudence)'의 필요성과 연관지었으며 그러한 역량을 바람직한 정치와 진정한 공익에 필수적이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