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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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의 두 번째 비인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 소생의 세자 호(峼 : 뒤에 인종)를 왕위에 앉히려는 외척 [[윤임]](尹任) 일파의 대윤(大尹)과, 문정왕후 소생의 명종(경원대군)을 즉위시키려는 [[윤원형]] 일파의 소윤(小尹) 사이에서 왕위계승을 둘러싼 암투는 중종 말년부터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544년 인종의 즉위를 계기로 윤임 일파가 권력을 장악하자 [[이언적]](李彦迪) 등 사림들이 정권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1545년1545년에 인종이 병으로붕어 죽고,3일 명종이전 경원대군에게 [[선위]]하고 경원대군(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윤원형 일파의 소윤이 권력을 장악하여 대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숙청은 윤임이 중종의 여덟째 아들인 봉성군(奉城君)을 왕으로 삼으려 한다는 윤원형의 탄핵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문정왕후는 윤임·유관(柳灌) 등을 사사(賜死)케 하고 봉성군·이언적·[[노수신]](盧守愼) 등을 유배시켰다. 그뒤에도 반대파에 대한 숙청이 계속되어 [[을사사화]] 이래 6년 동안 1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다.
 
=== 을묘왜변과 비변사의 상설기구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