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벤스라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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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3월, [[러시아 제국]]을 [[평의회 공화국|소비에트 공화국]]으로 재건하기 위해, [[볼셰비키]] 정부는 전략적으로 부담이 큰,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명기된 영토 할양에 합의하고, 러시아는 [[유럽 러시아]], 발트 지역,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코카서스]] 지역의 경작지들을 독일에게 양도했다.<ref>[http://www.spartacus.schoolnet.co.uk/FWWbrest.htm Spartacus Educational: Treaty of Brest Litovsk].</ref> 이러한 대규모의 지정학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서부 전선에서의 전술적 패배, 전략상의 과도한 확장, 그리고 정계 파벌의 분열은 [[베르사유 조약]]의 강화 조항들에 따라 독일 제국에게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얻은 동유럽의 레벤스라움(전체 러시아 농경지의 33%, 산업력의 30%, 탄광의 90%)을 포기하고, 러시아 영토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그리고 우크라이나에게 양보하게 했다.
 
폴란드 영토를 독일 제국의 생활권이자 방어 경계로 삼기 위해 벌인 정복과 식민지화의 명목으로서, 9월 계획은 [[에리히 루덴도르프]] 장군이 1914년에 처음 주장한 대외 정책에서 유래했다.<ref name="Hillgruber, Andreas pp. 41-47"/> 25년 후, [[나치 독일|제3제국]]의 대외 정책은 동유럽의 비독일계 주민들의 희생을 통한 독일의 생활권 추구 및 현실화라는 문화적 목표를 유럽에 제2차 세계 대전을 가져온 [[폴란드 침공|9월의 전쟁]]을 통해 재현되었다재현했다.<ref>''A Companion to World War I'', p. 436.</ref> ''독일과 두 세계 대전''(''Germany and the Two World Wars'')에서, 독일의 역사가 안드레아스 힐그루버(Andreas Hillgruber)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서의 영토 확장이 아돌프 히틀러의 동유럽 대독일제국을 의한 독일 제국식의 청사진이었다고 주장했다:
 
{{quotation|독일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대개 경시되었던, 1918년 가을 동쪽 상황의 경과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바이마르 공화국|바이마르]] 시대의 한 흐름으로 밝혀진, 전쟁이 끝남을 걱정하는, 넓게 퍼지고 이상하도록 비이성적인 오해들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서부의 적의 우세와, 막대한 수의 미군 유입 이전의 독일 서부전선에서의 단계적 후퇴로 인해 알려졌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것들은 또한, 불가리아의 철수로 인한 발칸 전선 붕괴에 뒤따른 [[동맹국 (제1차 세계 대전)|동맹국]]들의 끔찍한 운명에 대해서도 아니었다. 대신, 그것들은 독일군이 "승자"로서 러시아의 넓고, 전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중요한 지역을 점령했다는 사실로 인해 판단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