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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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朴堤上, [[363년]] ~ [[418년]] 추정)은 신라의[[신라]]의 충신이다. 자는 중운(仲雲), 호는 관설당(觀雪堂)·도원(挑園)·석당(石堂) 등이다. [[혁거세 거서간]]의 9세손, [[파사이사금]]의 5세손이며, [[영해 박씨]](寧海朴氏)의 시조이다. 《[[삼국유사]]》는 김제상(金堤上)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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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王旣見寶海, 益思美海一欣一悲, 垂淚而謂左右曰. 如一身有一臂, 一面一眼, 雖得一而亡一, 何敢不痛乎. 時 堤上聞此言, 再拜辭朝而騎馬. 不入家而行, 直至於栗浦之濱, 其妻聞之, 走馬追至栗浦, 見其夫已在舡上矣. 妻呼之切懇, 堤上但搖手而不駐.
 
: 왕이 이미 보해(복호)를 만나자, 미해(미사흔)의 생각이 더하여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니, 눈물을 흘리며 좌우 신하들에게 말했다. "마치“마치 한 몸에 팔이 하나인 듯, 한 얼굴에 눈이 하나인 듯, 비록 하나는 얻었으나 하나는 잃었으니, 어찌 감히 괴롭지 아니한 일인가." 그 때에그때에 제상이 그 말을 들으니, 다시 절하고 하직하여 말을 탔다. 집으로 가지 아니하고, 곧바로 율포(栗浦) 물가로 향하니, 그의 처가 이를 듣고, 말달려 율포로 좇아가니, 이미 지아비가 배 위에 올라있었다. 아내가 간절하게 부르나, 제상은 다만 손을 흔들며 떠났다.
 
같은 편의 후반부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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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
[[눌지 마립간]]의 동생 [[미사흔]]을 구하러 삼도(三島)로 건너가기 전에 《[[부도지|징심록]]》([[부도지]])을 저술하였다고 전해진다.<ref name="박제상부도지">시인 김지하는 고서인 《부도지(符都誌)》 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 의해 쓰여진 것으로 보고, 《부도지》에서 언급한 [[마고성]](麻姑城)을 인류 시원(始原)의 문명이라고 규정한다. [[마고성]]은 21세기 현재에서 1만 4천 년 전 [[파미르고원]]에 있었다고 한다.
 
또 [[단군조선]]이 개국하기 이전 시대인 [[신시]](神市, 신시배달국)도 중요시한다. 고대로 돌아가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정신으로 현재의 위기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군]]이 실존인물이라고 믿으며, 율려가 생활 속에 가장 순수하게 살아있던 때가 단군시대이며 [[한민족]]의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다고 주장한다.</ref>
 
==가족 관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따르면, 그는 박씨라고 하나 일설에는 김씨라는 전승도 있다.
 
* 고조부 : [[지마 이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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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363년 태어남]]
[[분류:몰년 미상]]
[[분류:신라 사람]]
[[분류:신라의 왕족]]
[[분류:신라의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