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청사와 관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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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apanese General Government Building 1995.jpg|200px|thumb|국립중앙박물관 (1995년)]]
[[파일:Japanese GeneralGovernmentBuildingDemolition.jpg|200px|thumb|철거 가림막의 설치 (1996년)]]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자 1945년 9월 9일에 서울에 진주한 [[미군]]이 총독부 청사를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의 청사로 사용하였다.<ref>김정동 저, 위의 책, 228쪽.</ref> 같은 날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총독부 청사의 제1회의실에서 [[오키나와]] 주둔 미 제24군 군단장 [[존 하지]] 중장과 제9대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 사이에 항복 문서 서명식이 있었다.<ref>새한, 위의 책, 48쪽.</ref> 미군정에 의해 청사는 캐피탈 홀(Capital Hall)이라 불리게 되었고, 중앙청(中央廳)이라는 이름은 [[정인보]]가 캐피탈 홀을 번역하여 지은 것이다.<ref>새한, 위의 책, 49쪽.</ref> 1948년 5월 10일에 청사 중앙홀에서 [[제헌국회]]를 개의하였고, 1948년 8월 15일에는 청사 앞뜰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이 거행되었다.<ref>김정동 저, 위의 책, 234쪽.</ref> 한국전쟁 중에는 [[조선인민군]]이 인민군 청사로 사용하다가 퇴각하면서 방화하여 내부가 완전히 소실되었고, 1950년 9월 26일에 중앙청은 [[대한민국 국군]]이 다시 탈환하게 된다.<ref>{{서적 인용|저자=우동선, 박성진 외 6명|제목=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연도=2009-11-2|출판사=효형출판|쪽=269}}</ref> 1962년 11월 22일에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청사를 복구하여 중앙청 본청 개청식을 열었고,<ref>김정동 저, 위의 책, 239쪽.</ref> [[정부서울청사]]를 신축하여 이전하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정부 청사로 사용하였다. 1962년에1968년에 서양식 정문을 철거하고 광화문을 옛 자리에 복원하였다.<ref>윤홍기 저, 위의 책, 300쪽.</ref> 1986년 8월 21일에 청사의 개보수 작업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ref>김정동 저, 위의 책, 240쪽.</ref>
 
총독부 청사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통령 [[이승만]] 집권 당시부터 나왔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보류되었고, 대통령 [[노태우]]도 철거를 지시했었으나 청와대 비서진이 바뀌면서 다시 무산되었다.<ref name="특집">{{뉴스 인용|제목=<특집> 광복50주년 맞아 해체되는 총독부 건물-2|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935656|출판사=연합뉴스|저자=김영미|날짜=1995-08-07|확인날짜=2011-09-05}}</ref> 1991년 1월 21일에 문화부 장관 [[이어령]]은 업무 보고를 통해 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일제에 의해 파괴 변형된 경복궁의 원형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ref name="이사구">김정동 저, 위의 책, 249쪽.</ref> 1991년 6월에 일본 근대 [[건축사]] 연구자로 구성된 〈메이지 건축 연구회〉는 총독부 청사를 아시아 근대 건축사에 있어 가치있는 건축물로 평가하며 경복궁의 복원과 총독부 청사의 보전을 함께 하는 방향으로 철거 계획의 재검토를 대한민국 정부에 요청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과거 조선총독부 건물 보전 요청|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3545758|출판사=연합뉴스|저자=이정길|날짜=1991-06-03|확인날짜=2011-09-05}}</ref> 1993년 8월 9일에 대통령 [[김영삼]]은 민족 정기 회복을 위해 총독부 청사를 해체하여 경복궁을 복원하고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을 국책사업으로 건립하라고 [[내각]]에 지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金대통령 舊조선총독부건물 해체 지시|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705721|출판사=연합뉴스|날짜=1993-08-09|확인날짜=2011-09-05}}</ref> [[1994년]]에 총독부 청사의 철거 문제가 본격화되면서 철거와 보존이라는 논쟁의 대립 속에서 ‘완전철거론’과 ‘현상보존론’, ‘이전복원론’ 등의 주장이 제기되었다.<ref>김석만, 〈구 조선총독부청사의 공간과 형태분석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102호, 1997년 4월, 53쪽.</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