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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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이라는 말은 칸트가 만든 용어이며, 형이상학에서 벗어난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업적으로 인정되어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ref>{{서적 인용|저자= 조동일 |편집자= |기타= |제목= 우리 학문의 길 |초판발행일자= |초판연도= 1993-6-20 |초판발행월= |url= |형식= |확인일자= |판= 초판 |날짜= |연도= |출판사= 지식산업사 |출판위치= 서울 |언어= |id= |doi = |쪽=41}}</ref>
 
먼저 칸트는 의심의 여지 없는 학문이며 학문의 모범인 수학과 물리학의 진리가 어떻게 하여 성립하느냐를 문제로 삼았다. 과학적 진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먼저 감각적인 자극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혼돈된 자극을 "지금·여기에 있다"는 식으로, 정리된 어떤 지각으로 하는 것은 우리들의 감성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정리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명확한 지(=인식)로 삼기 위해서는 또한 생각하는 힘으로서의 오성(=지성)이 필요하다. 오성은 스스로의 범주(카테고리)에 따라서 사고하고 통일하고, 그것으로써 명확한 지(知)를 만들어 간다. 이리하여 우리들에게 있어서 명확한 대상, 확실한 지(=인식)는 감성과 오성의 협동에 의하여 성립된다. 더욱 인식된 지(知)를 보다 소수의 원리로 정리해 가는 것이 이성이다. 이들 여러 능력은 근원적 나(自我)에 의하여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의 근원적 자아의 활동 내지 조직(실험적 방법)에 의해 인식된다. 그러나 나 밖에서 주어지는 감각적 소재가 없이는 자아는 공허하다. 이론적인 능력으로서의 오성 내지는 이성의 권한에 대한 명확화는 반대로 이 능력의 행동 범위를 규정짓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에서 형이상학은 바로 월권을 하여, 생각하는 힘을 공전시켜 감각적인 경험이 주어지지 않는 신이나 불사(不死)나 자유를 자연 대상과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듯이 생각하였다. 칸트 거기에 종래 형이상학의 독단이 있으며 오류가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들은 형이상학적인 것을, 자연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으로(이론적으로) 문제삼을 수는 없으며, 신이나 불사나 자유는 자연과학 세계에서가 아닌 도덕적 실천에서의 문제라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