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엄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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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 ==
흔히 소용 엄씨의 생년이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략적인 해는 추정이 가능하다. 엄산수의 장남인차남인 엄회는 1455년 생이고, 차남인삼남인 엄계는 1456년 생이다.<ref>《영월엄씨대동보》</ref> 그런데 엄회는 소용 엄씨의 오빠[兄]로 기록되어 있다.<ref>《조선왕조실록》연산 52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3월 27일(무자) 2번째기사</ref> 이 세 사람은 모두 엄산수의 정실부인인 남양 홍씨의 소생이므로 소용 엄씨가 아무리 빨리 태어났다고 해도 1457년 이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또한 소용 엄씨의 친정 언니인 엄금소사가 1457년 이후에 태어났으므로<ref>엄금소사의 두 번째 출산이 1498년(무오년)에 있었는데, 그 뒤로도 자식을 둘이나 더 낳았으므로 1455년 이전에 태어난 것으로 보기 힘들다. 또한 엄금소사의 남편인 단게부정 이인이 1460년경 탄생했으므로 엄금소사의 나이를 아무리 많게 잡아도 1457년 이후에 탄생한 것이 분명하다.</ref> 소용 엄씨의 생년을 1458년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 소용 엄씨가 정확히 언제 후궁이 되었는지는 기록의 부재로 알 수 없으나 그녀가 최초로 사료에 등장한 것은 1477년 음력 3월 20일의 기록이다. 1477년 이전에 이미 후궁이 된 것으로 보이나 만약 1477년에 후궁이 되었다고 해도 십대 후반의 젊은 나이였다. 그 후 1478년~1482년 사이에 딸인 [[공신옹주]]를 낳았다.<ref>혜숙옹주가 1478년, 경순옹주가 1482년 생이다. 공신옹주는 혜숙옹주에게는 동생, 경순옹주에게는 언니가 된다.</ref> 만약 소용 엄씨가 1482년에 공신옹주를 낳았다고 가정하면 그녀는 늦어도 1466년 이전에는 탄생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가 1466년에 태어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1477년의 기록을 보면 소용 엄씨와 정씨는 중전 윤씨의 투기를 받을 정도로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되어 있는데, 21살의 혈기왕성한 성종이 12살밖에 되지 않은 엄 소용을 총애했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생년을 오차 없이 넓게 추정해 보면 1458년에서 1466년 사이에 태어난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는 아무리 늦어도 1462년 이전에는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성종의 다른 부인들과의 나이 차를 보면, 1456년 생인 [[공혜왕후]], 1455년 생인 [[폐비 윤씨]]보다는 나이가 확실히 적고 1471년 생인 [[귀인 권씨 (성종)|숙의 권씨]]보다는 나이가 많다. 또 1462년 생인 [[정현왕후]]와는 또래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현왕후와 소용 엄씨의 첫 출산 연도도 비슷하다. 그녀와 가장 친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보이는 [[귀인 정씨 (성종)|귀인 정씨]]와도 나이는 비슷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귀인 정씨가 그녀보다 먼저 임신(1477년)했던 것을 보면 귀인 정씨가 약간 나이가 많았던 것 같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성종의 후궁들의 나이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들의 나이가 '귀인 정씨-소용 엄씨-숙의 권씨-정현왕후'순이며, 정귀인과 엄소용이 성종보다 연상이라는 언급을 했으나 앞에서 밝혔듯이 이는 사실과 다르다.<ref>JTBC드라마 《인수대비》에서 인수대비(채시라)가 "나이가 많은 걸로 치자면, 정귀인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엄소용이겠지.", 숙의 권씨(강초희)가 "윤숙의(정현왕후)가 우리 중에 제일 젊으시니.", 폐비 윤씨(전혜빈)가 "엄소용과 정귀인은 모두 전하보다 연상이에요."라고 언급함</ref>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