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왕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차예진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태그: 모바일 앱
33번째 줄:
 
==== 현덕왕후 폐위의 원인 ====
현덕왕후가 저주한것은저주한것 은 사후 16년이 지난 [[조선 세조|세조]] 3년([[1457년]]) [[7월 17일]]([[음력 6월 26일]])의 일이다. 시기상으로는 야사의 기록과 비슷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르다.
 
현덕왕후의 모친 아지(阿只)<ref>아지(阿只)는 “아기”라는 뜻으로, 이는 곧 모친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음을 나타낸다.</ref> 와 왕후의 동생 [[권자신]](權自愼)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 복위 운동]]을 벌이다 발각되었다. 이에 권자신과 아지는 [[1456년]]에 처형되고, [[조선 단종|단종]]은 [[1457년]] [[7월 12일]]([[음력 6월 21일]])에 노산군으로 강등된다.
 
한편 이미 사망한 현덕왕후와 그 아버지 [[권전]]은 아지와 권자신의 죄로 인해 연좌되었고, 권전은 [[1456년]] [[8월 7일]]([[음력 7월 7일]]), 현덕왕후는 [[1457년]] [[7월 17일]]([[음력 6월 26일]])에 각각 서인으로 격하되었다. [[1476년]]([[조선 성종|성종]] 7년) [[5월 8일]]([[음력 4월 15일]])에는 그 여파로 현덕왕후의 신위를 불사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