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삼국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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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전한 경제|경제]]의 아들인 [[유여 (사람)|노공왕]](魯恭王)의 후손이다.
 
어릴 적부터 지방의 관리로 근무하였고 [[종실]]이었기 때문에 [[중랑]](中郞)으로 임명되었지만, 스승 [[축념]](祝恬)이 죽자 잠시 관직을 떠나 학문을 닦았다. 이후 관직에 추천되어 [[태상]](太常)에까지 올랐다. 한실의 정치가 부패하고 혼란스러워지자 청렴하고 명망있는 신하로 하여금 지방을 통치하도록 조정에 건의하고, 내심 [[교주]](交州)목(牧)을 희망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마침 [[익주]](益州)가 혼란스러워지자 익주목 [[감군사자]](監軍使者)에 임명되어 익주를 평정했다. 익주를 평정하자 내심 야망을 품고 수도 [[낙양]](洛陽)으로 가는 가도를 끊고 황실에서 파견한 사자를 살해하였다.
 
[[192년]]에 [[동탁]]이 암살되고, 수도인 [[장안]](長安)이 동탁의 부하들인 [[이각 (후한)|이각]](李傕) · [[곽사]](郭汜) 등에 의해 조정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194년]]에 [[마등]](馬騰)과 [[한수 (후한)|한수(韓遂)]]가 군대를 일으켜 장안을 공격하였다. 이때 유언의 두 아들 [[유범]](劉範), [[유탄 (후한)|유탄(劉誕)]]은 장안 성안에 있었다. 유언은 마등의 뜻에 동참하여 성 안에 있는 아들들과 합세하여 [[장안]](長安)을 함락시키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유언과 마등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이 와중에 유범과 유탄은 제때 장안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이각의 군사에 의해 붙잡혀 사형에 처해졌다. 셋째 아들인 유모(劉瑁)와 넷째 아들 [[유장 (후한)|유장(劉璋)]]만이 그때 장안에 없었기 때문에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셋째 아들은 곧 병들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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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중요 등장 인물}}
 
==주석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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