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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체자'''(簡體字,{{zh-stp|s=简体字|t=簡體字||s=简体字|p=jiǎntǐzìjientǐzìh}}) 또는 '''간화자'''(簡化字,{{zh-stp|st=化字|ts=化字| p=jiǎnhuàzìjienhuàzì}})는 [[1960년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국 공산당]]의 주도로 창안된 [[한자]]이다. 정확히 말하면, 간체자는 과거 중국에서 존재했던 약자체를 모두 통칭하는 말이고,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규범화된 글자체만 지칭하는 말은 '''간화자'''라고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원래의 전통적인 글자를 [[번체자]](정체자)라고 하고, [[중화민국]]에서는 [[정체자]]라고 부르며 간화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1956년]] 「한자간화방안(漢字簡化方案)」이 발표된 후 몇 년 동안의 연구를 거쳐, [[1964년]] 「간화자총표(簡化字總表)」가 발표되었다. [[중국 대륙]]과 [[싱가포르]]에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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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飞||飛||饣||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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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马||馬||鱼||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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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말기, [[1909년]], [[육비규]](陸費逵)가 〈교육 한자〉창간호에 ‘일반 교육에 속자를 채용해야 한다.(普通敎育應當採用俗體字.)’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간략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1919년]] [[5·4 운동]] 이후 중국의 전통 문화와 가치에 대한 반발이 심해졌고, 그 가운데서 한자를 중국 근대화의 장애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졌다. 한자를 간략화하거나 아예 없애자는 주장들이 지식인들에 의하여 강하게 제기되었다. [[5·4 운동]]을 이끈 [[푸쓰녠]](傅斯年)은 한자를 일컬어, “소와 뱀 같은 귀신의 문자다.(牛鬼蛇神的文字.)"라고 혹평하였다. 중국의 대문호인 [[루쉰]]은 “한자가 멸하지 않으면 중국이 반드시 망한다.(漢字不滅, 中國必亡.)”라고까지 주장하였다.
 
[[5·4 운동]]시대 [[1920년]] [[전현동]](錢玄同)은 [[신청년]](新靑年)에 한자 획수를 줄이는 방안(減省漢字筆的提議)을 발표하고, [[1922년]] [[육비규]]와 함께 국어 통일 주비회(國語統一籌備會)에 상용 한자 전체의 획수를 줄일 것을 제안했다. [[1934년]]에도 간략화된 한자를 제안하여, [[1935년]]에는 2400자에 이르러 '간체자보(簡體字譜)'의 초안이 마련되었다. [[국민정부]]의 교육부에서 324자의 '제1차 간략 한자표(第一批簡體字表)'를 발표했지만, 반대 여론으로 인해 실시되지는 않았다. 그 뒤로 간략자(簡略字)에 대한 수집은 줄었으나, [[1937년]] '자체 연구회(字體研究會)'가 1700자의 '간체자표 제1표(簡體字表第一表)'를 발표했다.
 
[[1955년]], 중국 문자 개혁 위원회(中國文字改革委員會)가 '한자 간화 방안 초안(漢字簡化方案草案)'을 발표하고, [[1956년]] 1월 '한자 간화 방안(漢字簡化方案)'이 정식으로 발표되어, 514자의 간체자와 54개의 간화된 변과 방이 채용되었다. 그 뒤, 간화자는 [[1959년]]까지 네 번 발표되어, [[1964년]] '간화자 총표(簡化字總表)'로 정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