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1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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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2년 2월 14일 오토 1세는 베렝가리오 2세와 결전을 벌이기 위해 로마를 떠났다. 로마를 떠나기에 앞서 그는 ‘한평생 허영심과 간통을 저지르며 산’ 요한 12세에게 세속적이고 육욕에 치중하는 생활방식을 포기할 것을 요청했다. 이러한 요청에 대해 내심 불쾌했던 요한 12세는 오토 1세가 빠른 속도로 베렝가리오 2세를 패퇴시켜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오토 1세에게 대항하는 동맹을 결성하기 위해 마자르인들과 [[동로마 제국]]에 특사를 파견했다. 또한 그는 [[이탈리아의 아달베르토]]와의 협상에 들어갔다.<ref>Mann, p. 254.</ref>
 
요한 12세가 보낸 사절들은 자신이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아보려고 오토 1세가 로마에 보낸 대표단에게 포로로 붙잡혔다.<ref>Gregorovius, p. 340.</ref> 그동안 요한 12세는 자신이 교황청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오토 1세를 안심시키기 위해 훗날의 [[교황 레오 8세]]가 되는 인물이 포함된 특사들을 보냈다.<ref>Mann, pp. 255-256.</ref> 하지만 오토 1세는 963년 아달베르토가 요한 12세와 협상하기 위해 로마로의 입성이 허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렝가리오 2세가 패배하여 투옥됨에 따라, 오토 1세는 963년 여름 로마를 포위하기 위해 돌아갔다. 로마에 다다른 그는 도시가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달베르토가 로마에 들어왔다고 비밀리에 오토 1세에게 전한 그의 지지자들은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전]]을 중심으로 요새화된 구역인 요안니스폴리스에 땅굴을 팠다. 그 동안 요한 12세와 그를 따르는 이들은 교황 레오 4세가 쌓아올린 성벽 안 구획에 머물러 있었다. 처음에 요한 12세는 로마를 사수할려고사수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는 갑옷을 입고 병사들 앞에 나타나 가까스로 오토 1세의 군대를 [[테베레 강]] 건너편으로 몰아냈다.<ref>Gregorovius, pp. 341-342.</ref> 하지만 공방전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요한 12세는 신속히 결단을 내려, 교회 재산을 가지고 아탈베르토와 함께 [[티볼리]]로 피신하였다.<ref>Norwich, p. 79; Mann, p. 256.</ref>
 
로마를 접수한 오토 1세는 요한 12세의 비리를 들어 그를 고소하고 개인 자격으로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요한 12세를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자신을 폐위시키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지 파문하겠다고 위협했다.<ref>Gregorovius, p. 347.</ref> 오토 1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노드를 소집하여, 당시 캄파니아 산맥으로 사냥하고 있던<ref>Norwich, p. 80.</ref> 요한 12세를 폐위시키고 그 자리에 로마의 평신도 국가 공무원을 앉혔다. 그가 바로 훗날의 [[교황 레오 8세]]이다. 이는 교회법에 따른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였다.<ref>Edward Luttwak, ''The Grand Strategy of the Byzantine Empir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150.</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