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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량의 유래 및 특성 ==
초량동은 조선 시대 동래부 사천면 구초량리였는데, 1910년 일제시대에는 부산부중면 초량동으로, 해방후에는 초량출장소 관내로, 또 1982년에는 법정동인 대창동3가를 흡수하는 등 많은 곡절이 있는 동이다.
동국여지승람과 동래부지에는 초량항은 절영도 안쪽에 있다 하여 영도안의 부산항 해변을 모두 초량항이라 하였다.
초량은 우리말로 "새뛰 또는 새터" 라 불렀는데 새뛰는 억새,갈대라는 뜻의 초(草)와 뒬량(梁)으로 한자음을 따서 지은 것이다.
1906년 시구개정에 의해 구초량의 명칭이 부평동,부민동등으로 확정되자 신초량(新草梁)이 초량이란 이름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한편 풍수상으로 부산의 지형은 엎드려 있는 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여와우형(如臥牛形)이라보고, 소(牛)는 초원(草原)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초량(草梁)이란 명칭이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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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량초등학교]]
* 초량1어린이집
* 한국경제신문(주)부산지사
* [[한국경제신문]]
* 한겨레신문사(주)부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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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규]] ({{출생일과 나이|1960|9|21}} ~ ) - 희극인, 영화감독, 현(現) [[IN&IN]](영화사) 대표 이사
 
== 주석각주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