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불탑사 오층석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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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1단의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두고,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탑 주변에는 돌담이 둘려져 있다.
 
기단은 뒷면을 뺀 세 면에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는데, 무늬의 바닥선이 꽃무늬처럼 솟아나도록 조각하였다. 탑신의 1층 몸돌 남쪽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만들어 놓았다. 지붕돌은 윗면의 경사가 그리 크지 않지만, 네 귀퉁이에서 뚜렷하게 치켜 올려져 있다. 꼭대기에 올려진 머리장식은 아래의 돌과 그 재료가 달라서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전체적인 탑의 모양이 조형성이 적고 무거워 보이는 점으로 보아 지방색이 강했던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 현지 안내문 ==
{{인용문|이 탑은 단층 기단 위에 오층의 탑신을 형성한 일반형 석탑이다. 탑신부 각층 비례와 각부의 양식은 고려시대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석탑은 고려 충렬왕 26년(1300)에 원나라의 황실에 공녀로 끌려가 황후가 된 기(奇)씨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당시 원나라 황제인 순제에게는 태자가 없어 고민이었다. 그 때 북두칠성의 명맥이 비친 삼첩칠봉에 탑을 세워 불공을 드려야 한다는 한 승려의 비방을 받아 천하를 두루 살피다가 마침내 탐라국 영주 동북 해변에 위치한 이 곳에서 삼첩칠봉을 찾게 되었다. 원나라는 사자를 보내어 삼첩칠봉중에서도 주봉인 이 자리에 오층탑을 건립하고 불공을 드린 후 태자를 얻었다고 한다. 그 후 이 곳은 아들을 원하는 여인들의 성지처럼 되었다. 석탑이 세워질 당시 사찰의 이름을 원당사라 하였으나 원당사는 세 번의 화재로 소실되었다.<ref name="현지">현지 안내문 인용</ref>}}
 
== 주석각주 ==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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