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문단 이름 변경 (주석 → 각주)
4번째 줄:
|그림=Battle of Adrianople 1.png
|설명=
|날짜=[[379년]] [[8월 9일]]
|장소=[[아드리아노폴리스]] 근처
|결과=[[고트족]]의 결정적 승리
19번째 줄:
 
== 배경 ==
[[376년]] [[훈족]]의 침입으로 위협받은 고트족]은 동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스]]에게 로마 제국의 영토로의 이주를 허가해 달라고 청원하였다. 발렌스는 그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트라키아]]로 이주를 허가하고 지방정부에 그들의 정착을 도우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로마의 [[푀데라티|동맹 부족]]이 되어 정착해 안정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었으나 트라키아의 총독 루키피누스는 황제가 명령했는데도 [[도나우 강]]을 건너온 고트족의 재산을 빼앗고 거처를 마련해 주지 않아 이들은 거의 기아 상태에 빠졌다.
 
[[377년]] 여름, 살아남고자 죽을힘을 다해 저항하기 시작한 고트족 난민들은 마리아노폴리스로 몰려가서 루키피누스와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총독 루키피누스는 거절하고 오히려 군대를 이끌고 이들을 해산하려고 시도했으나 루키피누스는 오히려 고트족에게 패주했고 발렌스는 [[서로마 제국|서로마]] 황제 [[그라티아누스]]에게 증원군을 요청했다.
 
동서 로마 제국의 대규모 증권군에도 고트족과 로마군 어느 쪽도 분명히 승리하지 못한 채 2년이 경과하였다. [[378년]] 봄, 그라티아누스에게 약속받고 군대를 직접 이끌고 [[발칸 반도]]로 마침내 향한 발렌스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를 출발해 5월 말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했다.
 
그라티아누스도 증원군을 더 보냈으나 [[알레마니족]]이 [[라인강]]을 넘어 쳐들어오자 병력을 다시 불러들였고 갈리아에서 알레마니족 격퇴에 성공한 일변, 발렌스는 [[아드리아노폴리스]]까지 진군하여 상당한 규모의 고트족을 격퇴하고 서방의 증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44번째 줄:
발렌스를 계승해 동로마 황제가 된 [[테오도시우스 1세]]는 계속해서 밀려오는 고트족을 로마 영토 내로 마침내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 주석각주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