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스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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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툴르즈는 친가톨릭적 성향이 특히 강했는데, 그 예로 당시보다 200여년 전 약4000여명의 시민들이 이단으로 몰려 가톨릭 교도들에게 학살되었는데 이 날이 돌아오면 툴르즈인들은 성대한 축제를 벌일 정도였다. 사건 당일 칼라스의 아들은 자신이 프로테스탄트라는 이유로 취업에 제한을 받는 등 삶을 비탄하여 목을 매어 자살했는데 그 광경을 본 몇몇 가톨릭 교도들이 칼라스와 그 가족이 아들의 개종을 막으려 죽였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에 고무된 시의 관료들이 칼라스와 가족들을 투옥시키고 가장인 칼라스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형을 집행했다.<ref>김우영《볼테르의 종교적 관용 사상 : 무신론자 배제론과 세속적 국가 종교론을 중심으로》(서강대학교대학원 석사논문)</ref>
 
칼라스의 처형에 찬성한 판사들은 이 허약한 노인은 [[거열형]]의 고통을 이길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 형틀에 묶이면 자신의 죄와 공모자들의 죄를 자백할 것이라며 나머지 판사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판사들은 칼라스의 형을 집행하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노인은 바퀴에 묶여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을 불러 자신의 결백함의 증인으로 삼았으며 또한 잘못을 저지른 판사들을 용서해달라고 기원했다. 볼테르는 이 처형을 보며 이런 명언을 남겼다.
"네가 타인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너 역시 타인에게 행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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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2|"의견이 세상을 지배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철학자가 사람들의 의견을 지배한다."<ref>타임라이프 북스《이성의 시대》(가람기획, P115)</ref>}}
 
== 주석각주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