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 지배 하의 조지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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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의 전쟁 참여가 헛수고로 돌아가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2월 혁명|2월 혁명]]이 일어났다. 오자콤(남캅카스를 위한 비범한 위원회)이라고 불렸던 새로운 일시적인 정부가 남캅카스를 통치하기위해 확장 설치되었다. 트빌리시에서, 도시에 주둔한 대부분의 러시아 군인들이 볼셰비키에게 호의를 갖고 있던 이래로 어떤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러나 1917년에 주둔한 군인들이 조지아를 등지고 북으로 향하게 되자, 조지아는 사실상 러시아의 군대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멘셰비키는 러시아의 수도에서 볼셰비키에게 권력을 가져다 줬던 [[10월 혁명]]을 거부한 멘셰비키당의 영향권에 있었다. 남캅카스는 그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남았다. 그리고 터키의 군대가 1918년 2월에 국경을 가로질러 침입하자, 러시아로부터 분리된 문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1898년 4월 22일에, 납캅카스 의회에서 최종적으로 독립을 위한 투표를 했고, [[남캅카스 민주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스스로 독립을 선언했다. 그 사실은 한달 동안만 지속되었다. [[조지아 (국가)|조지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으로 구성된 그 세 연방은 각각 그들의 다른 역사, 문화와 목표를 갖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터키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군대에 침입에 대응하려는 아르메니아의 방어가 가장 중요했다. 반면에 무슬림 아제르바이잔인들은 터키와 서로 마음이 통했다. 조지아는 터키보다는 독일과 교류하여 도래할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 최고의 관심사였다. 1918년 5월 26일에, 조지아는 독립을 선언했고, 그 때는 1921년에 볼셰비키가 침입하기 전이었다.<ref>Entire "Later Russian rule" section: Suny Chapters 7 and 8</ref>
 
== 주석각주 ==
<referenc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