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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려'''(范蠡, ?기원전 517년 ~ ?)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월]]의 정치가, 군인군인으로, 자는 소백(少伯)이다. 전언에 의거하면따르면, 초 평왕 20년인 BC[[기원전 517년 출생이라고도 한다.]]에, 현 하남성 남양인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완지 출신으로, 초나라 초기 가장 유명한 정치가, 군사가, 경제학자였다. 월나라 왕 [[구천]]을 섬기고 구천을 춘추오패에[[춘추오패]]에 설 수 있게까지있기까지 기여한 공로가 가장 크다.
 
== 월나라 ==
범려가 어디에서 출생하고 어떻게 월에서 벼슬을 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이웃의 오의 왕 [[합려]]가 [[오자서]], [[손무]]에게 도움받아 국력을 신장하자 패권 경쟁에서 밀리면 곧 멸망하던 시기의 월도 국력 신장에 최선을 다한다. 결국 오가 흥사(興師)하여 월을 침범하였지만, 기발한 계책으로 오를 패퇴시킨다. 범려는 자살 특공대를 조직하여 적의 눈 앞에서 목을 스스로 베게 한다. 경악하는 오 군대를 급습하여 [[합려]]를 상처 입히고 오 군대를 초토화시킨다. 이 상처로 합려는 결국 죽는다.
합려 사후 왕위를 계승한 오 왕 [[부차]]는 오자서에게 도움받아 복수할 칼날을 간다. 오의 복수를 두려워한 구천은 오를 미리 침략하려 한다. 범려가 만류해도 [[월왕|월 왕]] [[구천]]은 출병하여 대패한다. 월 왕 구천은 부차에게 머리를 조아려서 신하를 자처하고, 문종(文種)은 구천을 구명하려고 부차의 측근인 재상 [[백비]](伯嚭)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 설득하는 때 오자서는 부차에게 구천을 죽여야 한다고 적극 간언하지만, 부차는 빼어난 미인인 [[서시]]까지 바친 [[월나라|월]]을 속국으로 삼는 선에서 끝낸다.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이 서로 복수를 다짐한 데서 [[와신상담]]의 고사성어가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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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을 탈출한 범려는 이름을 바꾸고 장사해서 막대한 부를 얻었다. 범려의 이름을 들은 제는 범려에게 재상 자리를 권유하지만, 범려는 고명이 불행의 원인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재산을 분배하고 재차 도망간다. 제에서 도망한 범려는 조로 와서 현재 산동성 도현으로 거처를 옮기고 도주공이라고 자칭했다. 여기서도 장사에 성공하여 막대하게 축재하였는데 늙어서 은퇴한 후 유유자적하였다. 『[[사기 (사마천)|사기]](史記)』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전설을 언급한다.
 
[[분류:생몰년몰년 미상]]
[[분류:춘추기원전 전국517년 시대 사람태어남]]
[[분류:월나라 사람]]
[[분류:초나라 (춘추 전국 시대)사람]]
[[분류:춘추 시대의 정치인]]
[[분류:춘추 시대의 군인]]
[[분류:춘추 전국 시대의 학자]]
[[분류:군사학자]] <!--군사가-->
[[분류:중국의 경제학자]]
 
 
경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