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도총: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문단 이름 변경 (주석 → 각주)
편집 요약 없음
17번째 줄: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도요토미 정권]]은 [[임진왜란]](1592년)을 일으켜 종자도총을 사용하였다. 일본 전체 침략군의 4분의 1인 160,000명 가량이 [[아시가루|조총수]]였다.<ref>Perrin p.27</ref> 다수의 조총수의 공세에 힘입어 일본군은 조선에 상륙, [[부산성]]과 [[동래성]]을 점령하고 불과 18일 만에 [[서울]]을 점령할 수 있었다.<ref>Perrin p.28</ref>
 
[[파일:Bronze barreled Japanese matchlock pistol.jpg|thumb|근세 일본의 화승식 권총.]] [[다이코태합|타이코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히데요시]] 사후 내란 상태([[세키가하라 전투]])를 겪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종식되었다.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를 열었으며, 일본은 이후 250년간 평화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이 시기를 [[에도 시대]](1603년 ~ 1868년)라고 부른다. 17세기부터 일본은 [[쇄국]] 정책을 고수하며 서방세계와의 소통을 스스로 단절시켰다. 일반적인 통설과 달리, 쇄국은 일본의 ‘총의 포기’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에도 시대에는 총이 사용되어야만 할 대규모 무력 충돌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총기의 사용이 줄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에도 시대의 자그마한 무력 충돌에서는 [[일본도]]가 더 효과적인 무기로 간주되었다. 또한 고립 정책이 일본의 총기 생산을 감소시키지도 않았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그 반대로, 에도 시대 말기까지 일본에 200명 이상의 총기 제작자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존재한다.<ref>Samurai Archives Podcast EP05 "The Myth of Samurai Giving Up the Gun" http://samuraiarchives.podbean.com/2011/05/29/ep05-the-myth-of-samurai-giving-up-the-gun/</ref> 하지만 총기의 사회적 위치가 변한 것은 사실이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L. 하월]]의 주장에 따르면, 이때 일본의 총기는 무기라기보다 농지에서 동물들을 위협하는 농기구처럼 되어 버렸다.<ref>{{저널 인용|성=Howell|이름=David L.|제목=The Social Life of Firearms in Tokugawa Japan|저널=Japanese Studies|날짜=2009-05-01|volume=29|issue=1|쪽=65–80|doi=10.1080/10371390902780530|url=http://www.tandfonline.com/doi/abs/10.1080/10371390902780530?journalCode=cjst20#preview|확인일자=2012-01-15}}</ref> 200년 이상 외침이 없자 종자도총은 사무라이들의 사냥이나 사격 연습에 사용되었으며, 대다수는 [[다이묘]]들의 무기창고에 처박히게 되었다.
 
[[파일:Himeji Oshiro Matsuri August09 007.jpg|thumb|left|종자도총을 들고 [[리인액트]]를 하는 현대 일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