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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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예진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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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월에는 자신의 데뷔 앨범이자 유작 앨범이 된 《[[사랑하기 때문에]]》를 [[서울음반]]을 통해 발표한다. 이 음반은 당초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심의에서 반려가 되었으며, 발매 초기에도 평론가들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얻지 못했다.<ref>[http://ruliweb.daum.net/news/view/MD20071108105710051.daum 故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여주인공은 '플루트 김'] 《마이데일리》, 2008년 11월 8일 작성</ref> 클래식 음악의 화성학과 갖가지 악기들의 음색을 터득한 유재하는 기존의 대중 가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노래를 만들었으며, 음악 관계자들조차도 '노래가 이상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ref>[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08231010521&code=900313 유재하, 한국 ‘대중음악의 自主’ 를 이루다.] 《경향신문》, 2007년 8월 23일 작성</ref>
 
음반 발표 후인 [[1987년]] [[11월 1일]] 새벽 3시 27분 경,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강변북로]] 부근에서 술에 취한 친구 성모씨가 몰던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마주오던 택시와 정면 충돌하여충돌하는 현장에서사고로 인해 2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f>휴지통 《동아일보》, 1988년 8월 3일</ref> 향년 26세. 사망후 일반인들과 음악 전문가들 사이에 유재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으며, 유재하의 음악은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스물 여섯해라는 짧은 삶에 단 한 장의 앨범을 남겼지만 '발라드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김광진 (1964년)|김광진]], [[신승훈]] 등의 후배 음악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유재하를 기리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1989년]]부터 계속되고 있다.<ref name="조이뉴스061101"/> 혹자는 만약 유재하가 살아 있었다면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특히 발라드의 역사에 있어 큰 변화를 가져왔을 거라 말한다. 비록 한장의 유작 앨범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그의 음악 전부이지만, 그만큼 우리 한국 음악계에 전해진 그의 음악적인 역량이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