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모잠: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
OpmuLtAbIanE (토론 | 기여) 잔글 《삼국사기》 출처를 추가함. |
||
17번째 줄:
}}
'''검모잠'''(劍牟岑, ? ~ [[670년]])은 [[고구려]]의 부흥운동 지도자로 벼슬은 [[대형|대형(大兄)]]이었다.<ref name="권06출신">{{서적 인용|저자=김부식|제목=[[삼국사기]]|날짜=[[1145년|1145]]|장=[[:s:zh:三國史記/卷06|卷第六 新羅本紀 第六]]}}六月 高句麗水臨城人牟岑大兄 收合殘民 自窮牟城 至江南 殺唐官人及僧法安等 向新羅行 至西海史冶島 見高句麗大臣淵淨土之子安勝 迎致漢城中 奉以爲君 遣小兄多式等 哀告曰 興滅國繼絶世 天下之公義也 惟大國是望 我國先王以失道見滅 今臣等得國貴族安勝 奉以爲君 願作藩屏 永世盡忠 王處之國西金馬渚 [6월에 '''고구려 수림성(水臨城) 사람인 대형(大兄) 모잠(牟岑)'''이 남은 백성들을 모아서 궁모성(窮牟城)으로부터 패강(浿江) 남쪽에 이르러 당나라 관리와 승려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서해 사야도(史冶島)에 이르러서 고구려 대신(大臣) 연정토(淵淨土)의 아들인 안승(安勝)을 보고 한성(漢城) 안으로 맞아들여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다. 소형(小兄) 다식(多式) 등을 [신라에] 보내어 슬피 아뢰었다. “망한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세대를 잇게 하는 것은 천하의 올바른 도리이니, 오직 대국에게 이것을 바랄 뿐입니다. 우리 나라의 선왕이 도를 잃어 멸망을 보았지만, 지금 우리들은 본국의 귀족 안승을 맞아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습니다. 바라는 것은 변방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 영원히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왕은 그들을 나라 서쪽 금마저(金馬渚)에 머물게 하였다.''']</ref> [[고구려]] 멸망 후 유민을 규합하고 옛 왕족 [[안승]]을 옹립하여 [[고구려 부흥운동|부흥운동]]에 나섰다. [[신라]]의 지원을 받아 [[당나라|당(唐)]]의 세력을 몰아내려 했으나, 당군의 반격과 그에 따른 후퇴 와중에 안승에 의해 살해당했다.
== 생애 ==
《[[구당서]]》고종본기에는 '''겸모잠(鉗牟岑)'''으로 기록되어 있다. [[수림성|수림성(水臨城)]] 사람이라고만 알려진 그는 고구려가 멸망하고 2년이 지난 [[
검모잠이 거병했을 당시 고구려 부흥군은 신라의 지원 아래서 활약하고 있었다. 신라군과 연합한 고구려 부흥군 세력은 한때 [[압록강]]을 넘어 [[요동]]까지 진출했고, 당의 사주를 받던 [[말갈|말갈족]]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기도 했으나,
{{인용문|
이때 [[문무왕]]은 이들을 금마저(金馬渚,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정착하도록 허락했다고 한다.<ref
또한 [[검모잠]]이 거병하였던 시기는 고구려가 멸망하던 668년부터 670년의 시점으로써 3차 고구려-당전쟁 당시 고구려 남부 지역에서 신라와 항전 또는 항복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 검모잠이 등장한 작품 ==
* 《[[연개소문 (드라마)|연개소문]]》([[SBS]], [[2006년]]~[[2007년]], 배우: [[안승훈]])
* 《[[대조영 (드라마)|대조영]]》([[KBS]], [[2006년]]~[[2007년]], 배우: [[김명수 (배우)|김명수]])
== 각주 ==
38번째 줄:
== 함께 보기 ==
* [[안승]](보덕왕)
* [[고연무]]
* [[고정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