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평 (삼국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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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3-4-15}}
'''왕평'''(王平, ? ~ [[248년]])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로, 자는 '''자균'''(子均)이고, 파서 탕거 사람이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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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년]] 제갈량이 기산으로 출병했을 때 따로 남쪽을 지켰으며, 장합이 공격해왔으나 굳게 수비해 막아냈다.
[[234년]] 제갈량이 죽고 [[양의]](楊儀)가 제갈량의 명을 받들어 퇴각을 결정하나 양의와의 사이가 지독히도 나빴던 [[위연]](魏延)은 양의의 명을 어기고 단독행동에 나서게 된다. 양의와 위연은 조정에 서로 상소를 하여 상대방이 모반을 일으켰다고 주장하지만 조정은 결국 양의의 편을 들어주었고 양의는 마대와 왕평에게 위연을 토벌하라고 명한다. 추격 끝에 위연의 군대를 만난 왕평은 직접 나아가 병사들에게
[[244년]] 위의 대장군 조상(曹爽)이 10여만 대군을 이끌고 한중으로 침공해오자 어떤 이들은
{{인용문2|그렇지 않습니다. 부현은 한중에서 1천 리 쯤 떨어져 있습니다. 적군들이 만일 관성을 얻게 된다면 우리는 위험해 처할 것입니다. 지금은 응당 먼저 유(劉) 호군(護軍, [[유민 (촉한)|유민]])과 두(杜) 참군(參軍)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았으나, 유민(劉敏)만은 이에 동의하여 함께 1천 명의 군사로 흥세산(興勢山)에서 [[비의]](費禕)의 지원이 [[248년]], 병사하였고, 적자 왕훈(王訓)이 그의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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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중국 삼국 시대 촉나라의 장군]]
[[분류:쓰촨 성 출신]]
[[분류:병사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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