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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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로서의 활동과 함께 《뽀뽀뽀》, 《가위바위보》, 《[[가요톱10]]》, 《만들어 볼까요》, 《정오의 희망곡》 등 다수의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도 활동했다. 수필 《그럼에도 행복하다》(1997년), 시집 《사랑하고 있습니다》(1999년), 수필 《내가 행복하게 사는 이유》(2000년) 등을 발간하기도 하였다.<ref name="송초"/> <ref>김우종.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2369591 원음방송, 故길은정 '10주기 추모 콘서트' 23일 개최]. 스타뉴스. 2014년 12월 19일.</ref>
[[1996년]] 9월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1997년]] 2월 편승엽과 결혼했고, 1997년 9월 이혼했다. [[2004년]] 9월 암이 재발했고, 결국 투병끝에 [[2005년]] [[1월 7일]] 사망했다. 암의 재발 이후에도 방송 활동을 이어갔었고, 사망 전날인 2005년 [[1월 6일]]에도 [[원음방송]]에서 생방송 《길은정의 노래 하나 추억 둘》을 진행하였다.<ref name="송초"/><ref name="오광1">오광수.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1900329112022&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19&officeId=00032&pageNo=12&printNo=16219&publishType=00010 암투병 길은정,가수 편승엽과 합의이혼 "사랑의 멍에 벗겨드리오리다"]. 경향신문. 1997년 9월 19일.</ref>
암에서 완치된 후 장기와 시신 기증 의사를 밝혔는데 암이 재발하자 [[각막]]만이라도 기증하고 싶어했지만 [[시신경]]에 암이 퍼졌을 가능성이 있어서 시신만을 기증했다.
== 논란 ==
=== [[명예훼손]] 행위 ===
길은정은 [[1996년]] 6월에 가수 [[편승엽]]과 교제를 시작하였다. 1996년 9월 둘째 주 무렵에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1996년 [[9월 22일]]에 편승엽과 결혼할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편승엽이 암에 걸린 길은정을 병 간호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오면서 길은정과 편승엽은 소위 '순애보'적 사랑의 주인공으로 그려졌다. 이듬해인 [[1997년]] 2월에 편승엽과 결혼식을 올렸고, 1997년 9월에 편승엽과 이혼했다.<ref name="오광1"/><ref name="동일"/><ref>오광수.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92200329119003&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6-09-22&officeId=00032&pageNo=19&printNo=15890&publishType=00010 편승엽·길은정"11월 웨딩마치]. 경향신문. 1996년 9월 22일.</ref>
5년 후인 [[2002년]] [[9월 6일]]에 [[인터넷]]을 통해 편승엽에 대한 비방글을 올렸고, 2002년 [[10월 2일]]에 채 모 씨, 김 모 씨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편승엽에 대해 비방했다. 길은정은 '편승엽이 혼인신고 직후 폭행과 금품 갈취 등을 일삼았으며 순애보로 포장된 우리의 결혼은 결국 돈을 노린 사기극이었다'고 주장했고, 채 모 씨와 김 모 씨는 '편승엽이 채 모 씨와 사실혼 관계에 있으면서도 혼자 산다고 속이며 김 모 씨에게 접근하는 등 파렴치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2002년 [[10월 4일]]에 편승엽은 자신의 배우자와 함께 길은정 등의 주장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편승엽은 2002년 [[10월 9일]]에 '허위사실유포를 통한 명예훼손' 혐의로 길은정을 고소했고, 검찰은 [[2003년]] [[3월 28일]]에 벌금 100만 원에 길은정을 약식기소했으나 법원은 '서류만 보고 재판할 수 없다'며 2003년 7월에 정식 재판에 넘겼으며, 길은정은 [[2004년]] [[7월 7일]]에 징역 7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길은정은 항소를 제기하였다가 취하하였다.<ref>이희용.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0249896 길은정-편승엽 공방, 법정으로 비화]. 연합뉴스. 2002년 10월 4일.</ref>
재판부는 "편승엽이 '순애보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사회에서 매장당할 만큼 파렴치범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편승엽이 순애보의 주인공처럼 결혼을 했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나 그렇지 못한 데에 대해 도덕적 비난을 받을 여지는 있지만 파렴치범으로 몰 수는 없다. 성폭행과 호스트바 문제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피고인은 불편했던 결혼 생활을 주관적인 관점에서 과장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피해자 비리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은 채 인터넷과 기자회견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해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피해를 입혔다. 피고인의 결혼 생활을 힘들게 했던 피해자가 방송에서 순애보의 주인공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보며 농락당했다고 생각한 점, 미처 몰랐던 피해자의 비리를 들은 뒤 감정적으로 집착하여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해 기자회견에 이른 점 등은 정상 참작된다. 피고인이 재판 과정을 통해 진실이라고 믿었던 사실이 허위나 과장이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고, 범행으로 인해 피해자와 그 가족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음에도 피해자 측의 명예 회복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고 있지 않은 점을 볼 때 죄질은 무겁다고 인정된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ref name="양정"/>
==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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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
*[[1999년]] 9월 ~ 1999년 10월: 하남국제환경박람회조직위원회 홍보위원
== 각주 ==
100번째 줄:
[[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분류:직장암으로 죽은 사람]]
[[분류:대한민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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