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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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구신들에 대한 회유책 ====
태조 이성계는이단은 즉위 초, 민심을 두려워하여 나라 이름을 그대로 [[고려]]라고 했으며, 모든 법제를 고려의 예에 따르게 했다.<ref name="chung155"/> 개국 직후 그는 [[길재]], [[이색]] 등의 구신들을 방문하여 협력을 요청했다. [[권근]], [[하륜]], [[심덕부]], [[설장수]] 등은 그의 요청에 협력하여 새 조정에 참여하였지만 [[길재]], [[신호]] 등은 그가 보낸 사자들의 면담을 거절하였다. [[신진사대부]]의 스승격인 [[이색]] 역시 이성계의이단의 조선 조정 참여 요청을 거절하였다.
 
[[이색]]은 [[한양]]의 왕궁에 온 뒤에도 그를 임금이라 하지 않고 그대, 송헌이라 불러서 [[남은]], [[정도전]], [[조준]] 등이 반발하기도 했다. [[개국공신]]인 [[남은]]의 동생 [[남재]]와 숙부 [[남을진]] 역시 이성계의이단의 협력 요청을 거부하고 은둔생활을 한다. [[개국공신]]을 책록하면서 고려의 구신들에게도 [[원종공신]]의 칭호를 내려 회유, 포섭하려 하였으나 일부만이 협력하고 대부분 [[고려]]의 구신으로 남겠다며 요청을 거절하여 조선 초기에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 계룡산 천도 계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