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종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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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석'''(郭鍾錫, 1846년 ~ 1919년)은 [[조선]]말의 주자학자·독립투사이다. 본관은 [[현풍 곽씨|현풍]]. 자는 명원(鳴遠), 호는 면우(傘宇) 또는 유석(幼石),. [[경상도]] [[이진상단성군|단성]](李震相丹城) 문인이다출신이다.
 
[[이진상]](李震相)의 문인이다. [[이황]]·[[이진상]]의 학문을 계승, 주리설을 주장하였고, [[1895년]] [[을미사변]] 때 영국 영사관에 일본침략 규탄을 호소하였고 [[1905년]] [[을사조약]] 체결시에 열국공법(列國公法)에 호소할 것을 상소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 다음 해에 이름을 도(鋾), 자를 연길(淵吉)이라 고치고, [[1919년]] 2월에는 유생들의 연서(連書)로 [[파리강화회의]]에 독립호소문을 발송시켜 투옥되어 2년형 언도를 받았으나 병사하였다.
 
그의 저서인 《면우집》에 나타난 사상은 (1) 모든 심정(心情)이 발(發)함에 있어 <이>는 주재(主宰)가 되고, <기>는 자용(資用)이 된다. (2) 4단7정이 다 같이 정(情)이요, 이발(理發)의 결과이다. (3) <이>는 선하기만 하지만, <기>는 혹은 악하기도 하니 <기>를 검치(檢治)해야 한다. (4) 심(心)의 본체는 이(理)에 있고, 심의 주재가 이이니 심(心)과 성(性)이 다같이 이라 해도 틀린 것이 아니다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