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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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고국천왕]]의 아들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 (三國遺史)》에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태조왕]]과 같이 이빨이 나 있고, 사물을 볼 수 있었다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의 이름이 위궁이라 하나,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에는 그의 아들 [[동천왕]]의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고국천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고국천왕의 왕후 우씨의 지지를 받아 즉위하였다. 우 왕후는 산상왕의 아내가 되어 다시 왕후에 올랐다. 이것은 고구려의 [[형사취수]] 풍습이 남아있는 것이며, 우씨의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산상왕의 형이었던 [[고발기|발기]](發岐)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군사를 동원하여 왕궁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3일 동안 산상왕이 농성하는 가운데 고구려 국내에서도 발기를 따르는 자가 없자 발기는 요동으로 망명하였다. 뒤이어 발기가 요동 태수 공손도(公孫度)에게 군사를 빌려 쳐들어 오니 왕은 동생 [[고계수|계수]](罽須)를 보내 막게 하였다. 계수가 발기의 군대를 물리치자 발기는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