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록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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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녹산'''({{zh-tsp|t=安祿山|s=安禄山|p=Ān Lùshān}}, '''안록산''', '''안루산''', [[703년]]? ~ [[757년]] [[1월 29일]])은 [[당나라]]의 무장으로[[장군|무장]]으로 [[안사의 난|안녹산의 난]]을 일으켰다. 아버지가 이란계 [[소그드인]], 어머니가 [[돌궐족]]이다. '''안'''(安)이라는 성은 소그디아나의 부카라(지금의 [[우즈베키스탄]])를 가리키는 중국식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녹산'''(禄山)이라는 이름은 빛을 의미하는 이란어 '''로우샨'''(rowshan)을 중국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그의 부족의 지도자인 카파간 카간이 716년에 죽게 되자, 일족들은 혼란을 피하여 중국으로 망명했다.
 
== 인생일생 ==
[[융저우 시|영주]]에서 호시아랑을 맡았는데 6개 국어를 잘했다능통하였다. 30대에는 [[장수규]]를 섬겨서 무관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742년]]에는 평로절도사가 되었다. 변경 방비를 잘 맡아서 [[당 현종|현종]]의 신임을 얻었다. [[744년]]에는 범양절도사, [[751년]]에는 하동절도사로 부임하면서 병력의 3분의 1을 장악했다. 안록산은 나라 이름을 연(燕)으로 정하고 황제를 칭했다칭하였다. 안록산이 사망한 이후에도 안경서가 연나라의 황제를 자처하면서 당나라와 대립하였다.
 
== 안사의 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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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신 ==
 
중국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드(Samarkand)와 부하라(Bukhara)주위에 있던 소그디안(Sogdian)왕국을 [[안식국]]으로 불렀는데, 그 안에는 강국(康國)과 안국(安國)이 나위어 있었다. 이 지역에는 [[위구르족]], [[회족]], [[페르시아]]인, 소그드인, [[돌궐]]족, [[창족]], 기타 [[서양인]]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살았는데, 그들이 중국에 이주하여 지역명을 따라 안, 강으로 득성하였다. 이들은 혈연 관계는 모두 다르며 중국 안에서의 득성 시기도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