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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依唯識宗所說,我執、法執有分別起與俱生起二種:(一)分別起之我執與法執,係受邪教及邪師等說之影響,由後天而起,乃吾人經驗上的意識現象之領域,故此類妄執易斷。(二)俱生起之我執與法執,乃吾人生起分別意識以前本來具有者,即無始以來,為執著我、法之虛妄所薰習而與生俱來者,此乃真正之妄執。
 俱生起之我執與法執其「相續」分為間斷、無間斷二種。前者屬現象的意識作用之第六意識,後者屬於較第六意識更微細之第七末那識,故末那識為妄執之根源,亦即其當體。末那識最顯著之作用,係以阿賴耶識之見分為對象,於見分生起我相及自心相,以此執著實我、實法。其本質為我癡、我見、我愛、我慢等。又於末那識所起之我執與法執極微細而難斷,若多修習殊勝之生空觀、法空觀則能斷除。"}}{{.cw}}'''미착'''(味著: 맛들여 집착함){{.cw}}'''욕'''(欲: 탐욕의 줄임말로서의 욕){{.cw}}'''애'''(愛: 갈애 또는 애착의 줄임말로서의 애){{.cw}}'''애욕'''(愛欲){{.cw}}'''애착'''(愛著, 愛着){{.cw}}'''애탐'''(愛貪){{.cw}}'''염애'''(染愛: 오염된 좋아함){{.cw}}'''염착'''(染著){{.cw}}'''집착'''(執著, 執着){{.cw}}'''탐독'''(貪毒: 독으로서의 탐){{.cw}}'''탐애'''(貪愛){{.cw}}'''탐욕'''(貪欲){{.cw}}'''탐욕개'''(貪欲蓋){{.cw}}'''탐착'''(貪著, 貪着){{.cw}}'''탐착'''(耽著: 그릇된 몰입과 들러붙음; 耽은 깊이 빠져서 열중하여 즐기는 것, 著은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D%83%90%EC%9A%95&rowno=1 貪欲(탐욕)]".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7916&DTITLE=%B3g 貪]".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7921&DTITLE=%B3g%B1%FD 貪欲]".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sfn|세친 조, 현장 한역|T.1612|loc=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12_p0849a06 T31n1612_p0849a06]. 탐(貪)|ps=<br>"云何為貪。謂於五取蘊染愛耽著為性。"}}{{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loc=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1371&startNum=4 4 / 12]. 탐(貪)|ps=<br>"어떤 것이 탐(貪)인가. 오취온(五取蘊)에 대해 애착하고 탐착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sfn|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613|loc=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13_p0852b24 T31n1613_p0852b24 - T31n1613_p0852b26]. 탐(貪)|ps=<br>"云何貪。謂於五取蘊。染愛耽著為性。謂此纏縛。輪迴三界。生苦為業。由愛力故。生五取蘊。"}}{{sfn|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loc=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1372&startNum=9 9 / 24]. 탐(貪)|ps=<br>"무엇을 탐욕[貪]이라고 하는가?
<br>5취온(取薀)에 대하여 사랑의 오염으로 탐착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이것은 결박하고, 삼계에 윤회하게 하여 괴로움을 낳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삼는다. 애착의 힘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5취온을 낳는다."}} 말하자면, 탐(貪)은 [[대상 (불교) 용어 목록/이#인식대상|대상]]에 들러붙어서[著, 着, attachment, 들러붙음] 떠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불교에서는 [[욕계]]를 비롯한 [[3계]]의 온갖 [[법 (불교)|법]](法)에 들러붙어 있어서 그것을 [[원리 (불교)|멀리 떠나]][遠離]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잡아함경]]》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에서 [[고타마 붓다]]는 '''[[수염 (불교)|수염]]'''(修厭: 싫어하는 마음을 닦는 것)을 닦으면 탐욕[欲]을 떠날 수 있고, 탐욕[欲]을 떠날 수 있으면 [[해탈]]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대승오온론]]》과 《[[성유식론]]》 등에 따르면,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무탐]](無貪)의 [[마음작용]]과 [[상응]]함으로써 탐(貪)의 [[마음작용]]을 [[대치 (불교)|대치]](對治)할 수 있는데,{{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6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30a04 T31n1585_p0030a04 - T31n1585_p0030a05]. 무탐(無貪)심소|ps=<br />"云何無貪。於有有具無著為性。對治貪著作善為業。"}}{{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6권. 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288 288-289 / 583]. 무탐(無貪)심소|ps=<br />"무엇이 ‘무탐(無貪)심소’<sup style="color: blue">25)</sup>인가? 윤회의 삶[有]<sup style="color: blue">26)</sup>과 그 원인[有具]<sup style="color: blue">27)</sup>에 대해서 탐착하지 않음을 체성으로 삼고, 탐착을 다스려서 선을 행함을 업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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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sup style="color: blue">181)</sup> ‘無貪’의 性用은 有과 有具에 대하여 애착을 없게 하는 작용을 말하며, 그 業用은 貪着을 對治하고 善을 짓게 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곧, 無貪은 迷惑의 세계에 살면서 생존에 집착하지 않는 심리작용을 가리킨다.
<br /><sup style="color: blue">182)</sup> 《大乘阿毘達磨集論》 1(《大正藏》 31,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05_p0664b09 664中]).
“何等無貪。謂於有有具無著為體。惡行不轉所依為業。”"}}{{sfn|세친 조, 현장 한역|T.1612|loc=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12_p0848c25 T31n1612_p0848c25]. 무탐(無貪)심소|ps=<br />"云何無貪。謂貪對治。令深厭患無著為性。"}} [[염 (마음작용)|염]](厭: 싫어함)의 [[마음작용]]은 [[무탐]](無貪)을 본질로 한 상태에서 [[혜 (불교)|혜]](慧: 지혜)를 가졌을 때 생겨나는 [[선심소|선한 마음작용]]으로 [[무탐]](無貪)의 특수한 경우이며 특히 [[대상 (불교) 용어 목록/이#인식대상|대상]]에 대한 염착(染著)을 제거하는 작용을 하는 [[선심소|선한 마음작용]]이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6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30c12 T31n1585_p0030c12 - T31n1585_p0030c14]. 무탐을 본질로 하는 경우|ps=<br />"厭謂慧俱無貪一分。於所厭境不染著故。不慳憍等當知亦然。隨應正翻貪一分故。"}}{{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6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297 297 / 583]. 무탐을 본질로 하는 경우|ps=<br />"싫어함[厭]이라는 것은 혜(慧)와 함께하는 무탐(無貪)심소의 일부이다. 싫어하게 된 대상에 대해서 탐착[染著]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색하지 않음[不慳], 교만하지 않음[不憍] 등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상응한 바에 따라서 탐심소 일부의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수염 (불교)|수염]](修厭)의 '염(厭)'은 이러한 [[선심소|선한 마음작용]]으로서의 '싫어함'으로, [[치 (마음작용)|치]](癡, 무지, 무명)와 [[상응]]하여 생겨나는 [[불선]]의 [[마음작용]]인, [[염세]](厭世: 세상이 귀찮음, 인생이 싫어짐<ref>"[http://zonmal.com/hanja_sen.asp?se=%E6%F4 厭]", 《존 한자사전》. 2012년 11월 19일에 확인.</ref>)의 '염(厭: 싫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불교에서 [[염세]]로 인한 [[자살]] 등의 근본에 [[치 (마음작용)|치]](癡, 무지, 무명)가 있다고 하는 이유는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사물 (불교)|사물]]에 대해 [[적정 (불교)|고요]]해질 수 있음으로써만 해결이 날 수 있는 것을 물리적 행동에 의해 해결이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염 (불교)|수염]](修厭)의 실천 또는 탐(貪)의 대치와 관련된 내용으로, 《[[성유식론]]》에서는, 탐(貪) 등의 [[불선근]](不善根)을 끊기 위해서는 공통 [[대치법]](對治法)과 개별 [[대치법]]을 둘 다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공통 [[대치법]]이란 오직 [[선혜]](善慧), 즉 [[선 (3성)|선]](善)의 상태의 [[혜 (마음작용)|혜]](慧, 지혜)로써 탐(貪){{.cw}}[[진 (마음작용)|진]](瞋){{.cw}}[[치 (마음작용)|치]](癡) 모두를 [[대치 (불교)|대치]](對治)하는 것이며, 개별 대치법이란 [[탐 (마음작용)|탐]](貪)에 대해서는 [[무탐 (마음작용)|무탐]](無貪)으로써, [[진 (마음작용)|진]](瞋)에 대해서는 [[무진 (마음작용)|무진]](無瞋)으로써, [[치 (마음작용)|치]](癡)에 대해서는 [[무치 (마음작용)|무치]](無癡)로써 [[대치 (불교)|대치]](對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탐(貪)을 끊기 위해서는 [[선혜]](善慧)와 [[무탐 (마음작용)|무탐]](無貪)의 2가지 [[마음작용]]으로 [[대치 (불교)|대치]](對治)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6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30a21 T31n1585_p0030a21 - T31n1585_p0030a23]. 불선근(不善根)|ps=<br>"以貪瞋癡六識相應。正煩惱攝起惡勝故立不善根。斷彼必由通別對治。通唯善慧。別即三根。"}}{{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6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291 291 / 583]. 불선근(不善根)|ps=<br>"탐{{.cw}}진{{.cw}}치 심소는 6식과 상응하고, 바로 번뇌에 포함되며, 악을 일으키는 것이 뛰어나기 때문에 불선근(不善根)으로 건립한다. 그것을 단멸하려면 반드시 공통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다스림에 의한다. 공통적이라는 것은 오직 선(善)의 혜(慧)이다. 개별적인 것이라는 것은 세 가지 근(根)<sup style="color: blue">48)</sup>이다.<br><sup style="color: blue">48)</sup> 무탐(無貪){{.cw}}무진(無瞋){{.cw}}무치(無癡)의 심소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