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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모든 객관적 대상을 [[색경 (6경)|색]](色){{.cw}}[[성경 (6경)|성]](聲){{.cw}}[[향경 (6경)|향]](香){{.cw}}[[오경 (불교)#미경|미]](味){{.cw}}[[촉경 (6경)|촉]](觸){{.cw}}[[
== 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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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식의 각각의 명칭을 [[안식 (6식)|안식]](眼識){{.cw}}[[이식 (6식)|이식]](耳識){{.cw}}[[비식 (6식)|비식]](鼻識){{.cw}}[[설식 (6식)|설식]](舌識){{.cw}}[[신식 (6식)|신식]](身識){{.cw}}[[의식 (6식)|의식]](意識)으로 명명한 것은 [[식 (불교)|식]] 즉 [[요별]]이 일어날 때 그 의지처[根] 또는 인식기관[根]이 되는 [[안근 (6근)|안근]](眼根){{.cw}}[[이근 (6근)|이근]](耳根){{.cw}}[[비근 (6근)|비근]](鼻根){{.cw}}[[설근 (6근)|설근]](舌根){{.cw}}[[신근 (6근)|신근]](身根){{.cw}}[[의근 (6근)|의근]](意根)의 [[6근]]을 따라 명명한 것이다.{{sfn|권오민|2003|pp=67-69}}
달리 말하면, [[식 (불교)|식]] 즉 [[요별]]이 일어날 때의 그 [[불교 용어 목록/이#인식대상|대상]]인 [[색경 (6경)|색경]](色境){{.cw}}[[성경 (6경)|성경]](聲境){{.cw}}[[향경 (6경)|향경]](香境){{.cw}}[[오경 (불교)#미경|미경]](味境){{.cw}}[[촉경 (6경)|촉경]](觸境){{.cw}}[[
6식(六識)의 각각은 [[식 (불교)|식]](識) 즉 요별(了別: 앎)의 뜻을 바탕으로 보통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5811&DTITLE=%A4%BB%C3%D1 六識]". 2012년 10월 29일에 확인}}{{sfn|곽철환|2003|loc="[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03377&categoryId=1885 육식(六識)]". 2012년 10월 29일에 확인}} 아래의 정의에서 주의할 점으로는, '요별의 작용', '앎' 또는 '지식'외에 별도의 행위자, 아는 자 또는 지식을 소유한 자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요별 = 앎 = 지식 = 마음 = 요별하는 자 = 아는 자 = 지식을 소유한 자'이다.{{sfn|권오민|2003|pp=45-49}}{{sfn|권오민|2000|pp=133-135}}{{sfn|고익진|1989|pp=1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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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식 (6식)|설식]](舌識): [[설근 (6근)|설근]](舌根)을 [[소의]](所依: 발동근거)로 하여 [[오경 (불교)#미경|미경]](味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 [[신식 (6식)|신식]](身識): [[신근 (6근)|신근]](身根)을 [[소의]](所依: 발동근거)로 하여 [[촉경 (6경)|촉경]](觸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 [[의식 (6식)|의식]](意識): [[의근 (6근)|의근]](意根)을 [[소의]](所依: 발동근거)로 하여 [[
===아비달마품류족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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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식'''(身識)은 [[신근 (6근)|신근]][身]과 [[촉경 (6경)|촉경]][觸]을 [[연 (불교)|연]](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생겨나는]] '''신근의 인식'''[身識]을 말한다. 이 때 [[신근 (6근)|신근]]이 [[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촉경 (6경)|촉경]]이 [[소연 (불교)|소연]](所緣)이 된다. [[신근 (6근)|신근]]에 의해 [[인식 (불교)|인식]][識]되는 [[촉경 (6경)|촉경]]에 대한[於身所識觸] 모든 '''이정당요별'''(已正當了別) 즉 [[시간 (불교)#3세: 과거·현재·미래|과거]]의 [[요별]][已了別]{{.cw}}[[현재 (불교)|현재]]의 [[요별]][正了別]{{.cw}}[[시간 (불교)#3세: 과거·현재·미래|미래]]의 [[요별]][當了別]을 통칭하여 [[신식 (6식)|신식]](身識)이라 이름한다.{{sfn|세우 조, 현장 한역|T.1542|loc=제3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6n1542_p0701a03 T26n1542_p0701a03 - T26n1542_p0701a05]. 안식(眼識)}}{{sfn|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949, T.1542|loc=제3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328&startNum=50 50 / 448]. 안식(眼識)}}
'''의식'''(意識)은 [[의근 (6근)|의근]][意]과 [[
== 전5식과 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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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5식]]은 [[감성적 인식]]일 뿐이기 때문에 완전한 인식이라고 할 수 없으며 또한 [[혜 (마음작용)|혜]](慧: 판단)의 작용은 없고 [[심 (마음작용)|심]](尋)과 [[사 (마음작용)|사]](伺)의 작용만 있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불확정적인 인식 또는 앎이다. 불확정적인 인식 또는 앎을 전통적인 용어로 '[확정적인] 분별, 식별, 요별 또는 앎이 없다'는 뜻에서 '''무분별'''(無分別)이라 한다. 여기에 [[의식]] 즉 [[제6의식]]의 [[오성적 인식]]과 [[기억]] 또는 [[재인식]]이 더해짐으로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비로소 대상에 대해 확정적인 인식 또는 앎을 가지게 된다. 확정적인 인식 또는 앎을 전통적인 용어로 '[확정적인] 분별, 식별, 요별 또는 앎이 있다'는 뜻에서 '''유분별'''(有分別)이라 한다.{{sfn|권오민|2003|pp=67-69}} 한편, [[전5식]]의 본질적 성질로서의 무분별(無分別: 불확정적인 인식)은 [[반야바라밀다]]의 [[무분별지]](無分別智)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므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설일체유부]]의 논사인 [[제바설마]](提婆設摩)는 《[[아비달마식신족론]]》에서 무분별(無分別) 즉 불확정적인 앎(요별)으로서의 [[전5식]]과 유분별(有分別) 즉 확정적인 앎(요별)으로서의 [[제6의식]]의 차이에 대해, 그리고 정신적 대상(즉 [[
{{인용문|有六識身。謂眼識耳鼻舌身意識。<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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