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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sup style="color: blue">181)</sup> ‘無貪’의 性用은 有과 有具에 대하여 애착을 없게 하는 작용을 말하며, 그 業用은 貪着을 對治하고 善을 짓게 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곧, 無貪은 迷惑의 세계에 살면서 생존에 집착하지 않는 심리작용을 가리킨다.
<br /><sup style="color: blue">182)</sup> 《大乘阿毘達磨集論》 1(《大正藏》 31,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05_p0664b09 664中]).
“何等無貪。謂於有有具無著為體。惡行不轉所依為業。”"}}{{sfn|세친 조, 현장 한역|T.1612|loc=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12_p0848c25 T31n1612_p0848c25]. 무탐(無貪)심소|ps=<br />"云何無貪。謂貪對治。令深厭患無著為性。"}} [[염 (마음작용)|염]](厭: 싫어함)의 [[마음작용]]은 [[무탐]](無貪)을 본질로 한 상태에서 [[혜 (불교)|혜]](慧: 지혜)를 가졌을 때 생겨나는 [[선심소|선한 마음작용]]으로 [[무탐]](無貪)의 특수한 경우이며 특히 [[불교 용어 목록/이#인식대상|대상]]에 대한 염착(染著)을 제거하는 작용을 하는 [[선심소|선한 마음작용]]이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6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30c12 T31n1585_p0030c12 - T31n1585_p0030c14]. 무탐을 본질로 하는 경우|ps=<br />"厭謂慧俱無貪一分。於所厭境不染著故。不慳憍等當知亦然。隨應正翻貪一分故。"}}{{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6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297 297 / 583]. 무탐을 본질로 하는 경우|ps=<br />"싫어함[厭]이라는 것은 혜(慧)와 함께하는 무탐(無貪)심소의 일부이다. 싫어하게 된 대상에 대해서 탐착[染著]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색하지 않음[不慳], 교만하지 않음[不憍] 등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상응한 바에 따라서 탐심소 일부의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수염 (불교)|수염]](修厭)의 '염(厭)'은 이러한 [[선심소|선한 마음작용]]으로서의 '싫어함'으로, [[치 (마음작용)|치]](癡, 무지, 무명)와 [[상응]]하여 생겨나는 [[불선]]의 [[마음작용]]인, [[염세]](厭世: 세상이 귀찮음, 인생이 싫어짐<ref>"[http://zonmal.com/hanja_sen.asp?se=%E6%F4 厭]", 《존 한자사전》. 2012년 11월 19일에 확인.</ref>)의 '염(厭: 싫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불교에서 [[염세]]로 인한 [[자살]] 등의 근본에 [[치 (마음작용)|치]](癡, 무지, 무명)가 있다고 하는 이유는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사물 (불교)|사물]]에 대해 [[적정 (불교)|고요]]해질 수 있음으로써만 해결이 날 수 있는 것을 물리적 행동에 의해 해결이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염 (불교)|수염]](修厭)의 실천 또는 탐(貪)의 대치와 관련된 내용으로, 《[[성유식론]]》에서는, 탐(貪) 등의 [[불선근]](不善根)을 끊기 위해서는 공통 [[대치법]](對治法)과 개별 [[대치법]]을 둘 다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공통 [[대치법]]이란 오직 [[선혜]](善慧), 즉 [[선 (3성)|선]](善)의 상태의 [[혜 (마음작용)|혜]](慧, 지혜)로써 탐(貪){{.cw}}[[진 (마음작용)|진]](瞋){{.cw}}[[치 (마음작용)|치]](癡) 모두를 [[불교 용어 목록/ㄷ#대치|대치]](對治)하는 것이며, 개별 대치법이란 [[탐 (마음작용)|탐]](貪)에 대해서는 [[불교 용어 목록/무#무탐|무탐]](無貪)으로써, [[진 (마음작용)|진]](瞋)에 대해서는 [[불교 용어 목록/무#무진|무진]](無瞋)으로써, [[치 (마음작용)|치]](癡)에 대해서는 [[불교 용어 목록/무#무치|무치]](無癡)로써 [[불교 용어 목록/ㄷ#대치|대치]](對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탐(貪)을 끊기 위해서는 [[선혜]](善慧)와 [[불교 용어 목록/무#무탐|무탐]](無貪)의 2가지 [[마음작용]]으로 [[불교 용어 목록/ㄷ#대치|대치]](對治)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6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30a21 T31n1585_p0030a21 - T31n1585_p0030a23]. 불선근(不善根)|ps=<br>"以貪瞋癡六識相應。正煩惱攝起惡勝故立不善根。斷彼必由通別對治。通唯善慧。別即三根。"}}{{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6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291 291 / 583]. 불선근(不善根)|ps=<br>"탐{{.cw}}진{{.cw}}치 심소는 6식과 상응하고, 바로 번뇌에 포함되며, 악을 일으키는 것이 뛰어나기 때문에 불선근(不善根)으로 건립한다. 그것을 단멸하려면 반드시 공통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다스림에 의한다. 공통적이라는 것은 오직 선(善)의 혜(慧)이다. 개별적인 것이라는 것은 세 가지 근(根)<sup style="color: blue">48)</sup>이다.<br><sup style="color: blue">48)</sup> 무탐(無貪){{.cw}}무진(無瞋){{.cw}}무치(無癡)의 심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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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착: 탐의 본질적 성질 ==
 
'''집착'''(執著, 執着)은 어떤 [[사물 (불교)|사물]](事物) 혹은 [[이와 사|사리]](事理)에 늘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리는 것을 말한다.<ref>"[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6290000 집착(執着)]", 《네이버 국어사전》. 2012년 12월25일에 확인.<br>"집착(執着):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ref> 달리 말하면, 허망한 분별심[分別之心] 즉 [[무명 (불교)|무명]](無明)으로 인해 [[마음 (불교)|마음]]이 어떤 [[사물 (불교)|사물]] 혹은 [[이와 사|사리]]를 '''고집'''(固執: 단단히 붙잡고 있음)하고 있어서 [[불교 용어 목록/ㅅ#사|사]](捨: 버림, 4무량심의 하나인 捨無量心)의 상태로 가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계착'''(計著)'''{{.cw}}계착'''(繫著){{.cw}}'''미집'''(迷執){{.cw}}'''집'''(執) 또는 '''착'''(著)이라고도 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8%91%97&rowno=1 繫著(계착)]". 2012년 12월 25일에 확인|ps=<br>"繫著(계착): 마음을 사물에 얽매어 고집하는 것. 집착(執着)과 같음."}}{{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4610&DTITLE=%B0%F5 執]". 2012년 12월 25일에 확인|ps=<br>"執: 梵語 abhiniveśa。指由虛妄分別之心,對事物或事理固執不捨。又稱迷執、執著、計著、著。不知五蘊假和合產生人等眾生,而妄執人我為實我之存在,稱為人執、我執或生執(眾生執之意)。不知五蘊之法乃虛幻不實之「空」,而妄執法我為實體,稱為法執。以上二者,稱為二執(我法二執、人法二執、生法二執)。有部等小乘允許法我之存在,故不斷離法執;然大乘認為二執皆空,故斷離此二執。此外,若認為一切為實有而固執偏有之見解,將實際上之「空」增益為「有」,稱為「增執」;反之,固執空無之見解,將實際上之假「有」減損為「無」,則稱「損執」。以上二者亦合稱為二執。<br>
 就「能執」之識體,安慧與護法二大論師主張不同,安慧認為於吾人諸識之中,第五識、第八識皆有法執,第七識有人執,第六識通人法二執;護法則以第五識、第八識為無執,唯第六識、第七識有執。另就「執」與「障」之別,成唯識論演秘卷一本謂執皆為障,以執限於有能取、所取二分者;障則通於業、果之非心、心所法,故障不一定為執。又執障為「我執煩惱障」、「法執所知障」之略稱。此外固執事物而不捨離之心,稱為執心、執著心;己心固執之而不捨離之見解,即種種之妄見,稱為執見;執著之妄情,稱為執情。〔大乘入楞伽經卷四無常品、大般若經卷四八五、成唯識論卷九、俱舍論卷十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