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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심의식'''(心意識)은 [[심 (불교)|심]](心){{.cw}}[[의 (불교)|의]](意){{.cw}}[[
심(心)은 범어 질다(質多)의 번역, 집기(集起)의 뜻. 의(意)는 범어 말나(末那)의 번역, 사량(思量)의 뜻. 식(識)은 범어 비야남(毘若南)의 번역, 요별(了別)의 뜻. 구사종에서는 심왕(心王)에 6식(識)을 세우고 심왕의 작용에 대하여 그 이름을 달리 함. (1) 심(心). 온갖 심리 작용을 집합하여 인기(引起)하므로 집기의 뜻이 있음. (2) 의(意). 여러 가지 대경을 헤아리고 생각하므로 사량의 뜻이 있음. (3) 식(識). 대경을 요별(了別)하는 뜻이 있으므로 식이라 함. 이 세 가지는 모두 6식의 다른 이름이라 함. 유식종에서는 8식을 통틀어 심ㆍ의ㆍ식의 세 뜻이 있다 함. 제8식은 온갖 종자를 모았고, 또 종자로 하여금 활동케 하므로 심(心)이라 하고, 제7식은 대경을 항상 살펴 사량하는 뜻이 수승하므로 사량이라 하고, 전(前) 6식은 자기 앞의 대경을 잘 식별(識別)하는 작용이 수승하므로 식이라 이름한다 함. ⇒식(識)ㆍ심식(心識)"}}{{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6742&DTITLE=%A4%DF%B7N%C3%D1 心意識]". 2012년 10월 3일에 확인|ps=<br>"心意識:
指心、意、識三者。心為梵語 citta 之意譯,音譯作質多,即集起之義。意為梵語 manas 之意譯,音譯作末那,即思量之義。識為梵語 vijñāna 之意譯,音譯作毘若南,即了別之義。大略言之,心是主體意與識是心作用之兩面。有關此詞之語意,大小乘論典有種種不同之說法。<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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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即此者即此心也。將所依義。釋意也。作能依止。故名為識 識能依意也。據上兩解。是心意識三。名義雖異。其體一也。"}}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심 (불교)|심]](心){{.cw}}[[의 (불교)|의]](意){{.cw}}[[
<br>...
<br>이상과 같이 심의식의 사상은 원시불교에서 시작하고 소승불교에서 더욱 발전하며 대승불교에 들어와서는 유식학적인 팔식사상의 발달에 기초가 된다. 즉 심(心)은 아라야식이라고 하고, 의(意)는 말나식(末那識)이라 하며, 식(識)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등 육식(六識)이라 하는 등 심의식을 각각 팔식(八識)에 배정하여 대승적인 유식사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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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불교)|심]](心)은 [[산스크리트어]] 치타(citta)의 번역어로 '신{{.cw}}구{{.cw}}의 3업(三業)을 쌓고 일으킨다'는 뜻의 [[집기]](集起)를 뜻하고,
[[의 (불교)|의]](意)는 [[산스크리트어]] 마나스(manas)의 번역어로 '과거에 쌓은 원인, 즉 업에 바탕하여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의 [[사량]](思量)을 뜻하며,
[[
예를 들어, "야! 이 OST 정말 아름다운데! 어떤 가수가 불렀을까? 음원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아보고 음원구입처에서 다운로드를 받아야겠다"라고 할 때, 그 OST가 아름답다고 아는 것은 [[요별]](了別), 즉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요별작용 또는 요별능력이고, 가수가 누군지 그리고 음원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사량]](思量), 즉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사량작용 또는 사량능력이고, 검색과 다운로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즉, 의지를 가지는 것)과 실제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인터넷 검색을 행하고 음원을 다운로드 받는 것은 [[집기]](集起), 즉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집기작용 또는 집기능력이다.{{sfn|권오민|2003|pp=67-69}}
크게 보면, 심의식(心意識), 즉 [[심 (불교)|심]](心){{.cw}}[[의 (불교)|의]](意){{.cw}}[[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심 (불교)|심]](心){{.cw}}[[의 (불교)|의]](意){{.cw}}[[
== 심: 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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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 요별 ==
'''요별'''(了別)은 심의식(心意識) 가운데 [[
[[요별]](了別)이라는 한자어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분명하게 분별한다'로, 대상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인식'''(認識: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ref>"[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0943300 인식(認識)]", 《네이버 국어사전》. 2012년 10월 18일에 확인.</ref>)하는 것을 말한다. 즉 [[요별]](了別)은 대상을 '''아는 것''', 즉 '''앎'''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사량]](思量: 생각하고 헤아림)을 바탕으로 현재의 [[인식 대상]] 또는 [[마음작용]] 대상에 대해 [[지식론|아는 능력 또는 측면]] 또는 [[지식론|분별하는 능력 또는 측면]], 즉 [[지식론|지식의 능력 또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5%BF%83%E6%84%8F%E8%AD%98&rowno=1 心意識(심의식)]". 2012년 10월 3일에 확인}}{{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6742&DTITLE=%A4%DF%B7N%C3%D1 心意識]". 2012년 10월 3일에 확인}}{{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loc=제4권. 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188 188-189 / 1397]. 심(心)·의(意)·식(識)}}{{sfn|원휘(圓暉)|T.1823|loc=제4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41n1823_p0843c01 T41n1823_p0843c01 - T41n1823_p0843c12]. 심(心)·의(意)·식(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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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불교 ===
[[심 (불교)|심]](心){{.cw}}[[의 (불교)|의]](意){{.cw}}[[
<br />3) 『雜阿含經』 2(『大正藏』 1권, 8상).<br />
“此心此意此識 常思惟…”
<br /><sup style="color: blue">4)</sup> 金東華, 『唯識哲學』(서울: 寶蓮閣, 1980), 57면."}}
《잡아합경》에서 [[심 (불교)|심]](心){{.cw}}[[의 (불교)|의]](意){{.cw}}[[
* 《잡아함경》 제2권 제35경 〈3정사경(三正士經)〉{{sfn|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T.99|loc=제2권 제35경 〈삼정사경(三正士經)〉.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02n0099_p0008a07 T02n0099_p0008a07 - T02n0099_p0008a18]. 심의식(心意識)|ps=<br />"爾時。世尊知彼心中所念。而為教誡。比丘。'''此心.此意.此識'''。當思惟此。莫思惟此。斷此欲.斷此色。身作證具足住。比丘。寧有色。若常.不變易.正住不。比丘白佛。不也。世尊。 佛告比丘。善哉。善哉。色是無常.變易.正住不。 比丘白佛。不也。世尊。 佛告比丘。善哉。善哉。色是無常.變易之法。厭.離欲.滅.寂沒。如是色從本以來。一切無常.苦.變易法。如是知已。緣彼色生諸漏害.熾然.憂惱皆悉斷滅。斷滅已。無所著。無所著已。安樂住。安樂住已。得般涅槃。受.想.行.識亦復如是。"}}{{sfn|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K.650, T.99|loc=제2권 제35경 〈삼정사경(三正士經)〉.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3&startNum=40 40 / 2145]. 심의식(心意識)|ps=<br />"그 때 세존께서는 그들의 마음 속 생각을 아시고 곧 훈계하여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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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품류족론》, 제1권, 〈1. 변오사품(辯五事品)〉.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6n1542_p0692b27 한문본] &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328&startNum{{=}}1 한글본]}}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비판적으로 집대성한 [[세친]](世親: 316~396)의 《[[구사론]]》에 따르면, [[심 (불교)|심]](心){{.cw}}[[의 (불교)|의]](意){{.cw}}[[
즉, [[부파불교]]에서는 각종 [[마음작용]]과 [[업]]을 쌓고 일으키는 [[집기]](集起)의 작용으로서의 [[심 (불교)|심]](心)과, 생각하고 헤아리는 [[사량]](思量)의 작용으로서의 [[의 (불교)|의]](意)와, 대상을 인식하는 [[요별]](了別) 즉 앎 또는 분별의 작용으로서의 [[
그리고 [[부파불교]]에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심 (불교)|심]](心){{.cw}}[[의 (불교)|의]](意){{.cw}}[[
[[심 (불교)|심]](心)으로 번역되는 치타(citta)에는 치트라(citra, 種種)의 뜻이 있는데, 이것은 [[마음 (불교)|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에는 닦고 닦지 않음에 의해 [[삼성 (불교)#선·불선·무기|선]]{{.cw}}[[삼성 (불교)#선·불선·무기|불선]]{{.cw}}[[삼성 (불교)#선·불선·무기|무기]] 등 여러 단계의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종종(種種)의 뜻에서는 [[마음 (불교)|마음]]을 [[심 (불교)|심]](心)이라고 한다. 그리고 종종(種種)의 뜻의 [[마음 (불교)|마음]], 즉 [[심 (불교)|심]](心)은 현행하는 [[마음 (불교)|마음]] 즉 현행하는 인식의 근거가 되는 [[전찰나]]의 [[의근]](意根)이 되어 현행하는 [[마음 (불교)|마음]]의 소의지(所依止: 의지되는 자)가 되는데, 이러한 [[의근]](意根)의 뜻에서는 [[마음 (불교)|마음]]을 [[의 (불교)|의]](意)라고 부른다. 그리고 현행하는 [[마음 (불교)|마음]] 즉 현행하는 인식은 [[의근]](意根)의 뜻의 [[마음 (불교)|마음]], 즉 [[의 (불교)|의]](意)를 의지하여 현재에 나타나므로 능의지(能依止: 의지하는 자)가 되는데, 이러한 현행(現行)의 뜻에서는 [[마음 (불교)|마음]]을 [[
=== 대승불교 ===
[[대승불교]]에서는 [[심 (불교)|심]](心){{.cw}}[[의 (불교)|의]](意){{.cw}}[[
즉 [[대승불교]]에서는 [[마음 (불교)|마음]](즉 심왕, 즉 심법)이 1가지로 단일하며 [[심 (불교)|심]](心: 집기){{.cw}}[[의 (불교)|의]](意: 사량){{.cw}}[[
이를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부파불교]]에서는 [[마음 (불교)|마음]]을 [[심 (불교)|심]]{{.cw}}[[의 (불교)|의]]{{.cw}}[[
<br />
이에 의하면 소승불교시대에는 심의식(心意識)이라는 명칭이 서로 표현만 다를 뿐 그 체성은 동일한 것으로 보았으며 동시에 이러한 심의식 사상이 일반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전체 소승사상을 통해 본다면 인간의 심성은 그 체성이 각기 다르며 활동도 다르게 한다는 학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인간의 심체(心體)는 유일한 것이며 그 활동하는 작용만 다를 뿐이라고 주장한 학설이 대부분이었다. 그 대표적인 학설은 소승불교를 최종적으로 종합하여 정리하였다는 세친론사(世親, AD. 4세기)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에 잘 나타나 있다.
<br />
아비달마구사론에 의하면 『심의식의 3가지 이름은 그 표현의 뜻이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그 체성은 유일하다<心意識三名 所 異 而體是一>』라고 하였다. 이에 의하여 소승불교는 우리 인간의 심체(心體)를 하나로 본 것이 지배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ref> 이러한 이유로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의 [[법체계 (불교)|법체계]]에서 심법(心法)은 [[6식]]을 하나로 묶은 1가지의 [[법 (불교)|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비해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에는 [[마음 (불교)|마음]] 즉 [[심 (불교)|심]]{{.cw}}[[의 (불교)|의]]{{.cw}}[[
於大、小乘佛教皆立有六識說。六識各以眼、耳、鼻、舌、身、意等六根為所依,對色、聲、香、味、觸、法等六境,產生見、聞、嗅、味、觸、知之了別作用,此即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等六種心識。喻如「六窗一猿」,六識之體為一,而起作用之門戶則六,概係六識說最初之意義。六識中,第六之意識稱為第六識,後世更賦予六識、意識、分別事識、四住識、攀緣識、巡舊識、波浪識、人我識、煩惱障識、分段死識等十名,稱為六識十名。<br />
除以上六識外,唯識宗另舉末那識與阿賴耶識(即阿梨耶識),成立八識說。其中從眼識至身識之五識(與六識說相同),總稱為前五識。至第六意識,稱為前六識。至第七末那識(即第七識,或單稱七識),稱為前七識(或單稱七識)。前七識以阿賴耶識為所依,而緣各境轉起,故稱為七轉識或轉識。而前六識能清晰識別對象,故稱為了別境識。第七末那識稱思量識,第八阿賴耶識稱異熟識。據護法之唯識說,八識中第六與第七識具有執著虛妄之對象為我或為法之遍計性,故稱「六七能遍計」。而前五識與第八阿賴耶識因無我、法之執著,故稱此為「五八無執」。復次,印度之'''無相唯識派'''認為八識之體性皆同,故主張八'''識體一之說'''。但'''有相唯識派'''及'''唯識宗'''則謂其體性各別,而主張八'''識體別說''';且二識乃至八識同時並起,同時轉起(俱轉),稱為八識俱轉。然而,小乘有部宗等不主張二識並起,異於前說。<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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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식유가행파 ====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에서는 제8식인 [[아뢰야식]]은 [[업]]의 종자(種子)를 적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인연]]이 갖추어지면 적집된 [[업]]의 종자가 현행의 상태로 나타나게 된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능력은 종종(種種)과 [[집기]](集起)의 뜻으로서의 [[심 (불교)|심]](心)과 부합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제7식인 [[말나식]]은 종자(種子)를 적집하는 능력을 가진 [[아뢰야식]]에 대해 잘못된 생각과 헤아림을 가져 [[아뢰야식]]을 '나[我]'로 집착하는 [[아집]](我執)을 가진다고 보았으며, [[말나식]]의 이러한 성격은 [[사량]](思量: 생각하고 헤아림)의 뜻으로서의 [[의 (불교)|의]](意)와 부합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6식]], 즉 [[전5식]]과 [[의식 (불교)|의식]](意識)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므로 [[요별]]의 뜻으로서의 [[
이와 같이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는 [[아뢰야식]]이 [[심 (불교)|심]](心)에, [[말나식]]이 [[의 (불교)|의]](意)에, [[전5식]]과 제6 [[의식 (불교)|의식]](意識)을 합한 [[6식]]이 [[
달리 말하면, [[유식유가행파]]에서는 [[
그리고, [[유식유가행파]]에서는 [[심 (불교)|심]](心)도 [[의 (불교)|의]](意)도 모두 보편적인 인식기능, 즉 넓은 의미의 [[
==== 수의 혜원 ====
[[수나라]]의 [[혜원]](慧遠: 523~592))은 《[[대승기신론의소]](大乘起信論義疏)》에서 [[유식유가행파]]와는 다소 다른 견해를 표명하고 있는데, 그는 제8식인 [[아뢰야식]]이 [[심 (불교)|심]](心)에 해당하며, [[업식 (5의)|업식]](業識){{.cw}}[[전식 (5의)|전식]](轉識){{.cw}}[[현식 (5의)|현식]](現識){{.cw}}[[지식 (5의)|지식]](智識){{.cw}}[[상속식 (5의)|상속식]](相續識)의 [[5의]](五意)가 제7식인 [[말나식]]을 이루고 이 [[말나식]]이 [[의 (불교)|의]](意)에 해당하며, [[전5식]]과 제6 [[의식 (불교)|의식]](意識)을 합한 [[6식]]이 [[
==== 신라의 원효 ====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는 《[[기신론소]](起信論疏)》에서 [[5의]](五意) 중 [[업식 (5의)|업식]](業識){{.cw}}[[전식 (5의)|전식]](轉識){{.cw}}[[현식 (5의)|현식]](現識)이 제8식인 [[아뢰야식]]을 이루고 이 [[아뢰야식]]이 [[심 (불교)|심]](心)에 해당하며, [[5의]](五意) 중 [[지식 (5의)|지식]](智識)이 제7식인 [[말나식]]을 이루고 이 [[말나식]]이 [[의 (불교)|의]](意)에 해당하며, [[5의]](五意) 중 마지막 [[상속식 (5의)|상속식]](相續識)이 제6식인 [[의식 (불교)|의식]](意識)을 이루고 이 제6 [[의식 (불교)|의식]]이 [[전5식]]과 제6 [[의식 (불교)|의식]](意識)을 통칭하는 [[
==== 당의 법장 ====
[[당나라]]의 [[법장]](法藏: 643~712)은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에서 [[5의]](五意) 중 [[업식 (5의)|업식]](業識){{.cw}}[[전식 (5의)|전식]](轉識){{.cw}}[[현식 (5의)|현식]](現識)이 제8식인 [[아뢰야식]]을 이루고 이 [[아뢰야식]]이 [[심 (불교)|심]](心)에 해당하며, [[5의]](五意) 중 나머지 [[지식 (5의)|지식]](智識){{.cw}}[[상속식 (5의)|상속식]](相續識)이 제6식인 [[의식 (불교)|의식]](意識)을 이루고 이 제6 [[의식 (불교)|의식]]이 [[전5식]]과 제6 [[의식 (불교)|의식]](意識)을 통칭하는 [[
==== 세친과 진제 ====
한편, [[대승불교]]권의 이러한 견해들과는 상이한 견해로서, [[대승불교]]의 주요 논사들 중 한 명인 [[세친]](世親: 316~396)의 《[[불성론 (책)|불성론]](佛性論)》의 [[파라마르타|진제]](眞諦)의 '''한역본'''의 제3권에서는 [[전5식]]과 제6 [[의식 (불교)|의식]](意識)을 합한 [[6식]](六識)을 [[심 (불교)|심]](心)에 해당시키고, [[아타나식]](阿陀那識) 즉 [[집지식]](執持識)을 [[의 (불교)|의]](意)에 해당시키고, [[아뢰야식]]을 [[
==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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