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지번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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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ref> 즉, [[욕계]] [[수소단]]이라고 하거나 [[욕계]]의 [[수혹]]이라고 할 때는 [[부파불교]]의 [[번뇌론]]의 문맥에서 말하는 것인지 [[대승불교]]의 [[번뇌론]]의 문맥에서 말하는 것인지를 구별하여야 한다.
 
[[설일체유부]]에서는 [[유신견]](有身見){{.cw}}[[변집견]](邊執見)이 오로지 [[견혹]]의 [[불교 용어 목록/선#성질|성질]]이기 때문에 [[견도]]에 의해 끊어진다고 보는데 비해, [[유식유가행파]]에서는 [[유신견]]{{.cw}}[[변집견]]이 [[견혹]]의 [[불교 용어 목록/선#성질|성질]]과 [[수혹]]의 [[불교 용어 목록/선#성질|성질]]을 모두 갖고 있으며 [[견혹]]의 [[불교 용어 목록/선#성질|성질]]에 해당하는 부분은 [[견도]]에 의해 끊어지지만 [[수혹]]의 [[불교 용어 목록/선#성질|성질]]에 해당하는 부분은 [[삼도|수도]]에서 끊어진다고 본다. [[유식유가행파]]에서 이러한 견해를 가지는 이유는 [[부파불교]]에서는 [[마음 (불교)|마음]]이 [[6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데 비해 [[유식유가행파]]에서는 [[마음 (불교)|마음]]이 [[6식]]외에 [[말나식]]와 [[아뢰야식]]이 더 있어 총 [[8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며, [[말나식]]이 [[아뢰야식]]의 [[인식작용]]([[행상]], 즉 [[견분]])을 [[자내아]](自內我) 즉 [[실아]](實我)로 오인하여 항상 [[아치 (4번뇌)|아치]](我癡){{.cw}}[[사번뇌|아견]](我見){{.cw}}[[아만 (4번뇌)사번뇌|아만]](我慢){{.cw}}[[아애 (4번뇌)|아애]](我愛)의 [[4번뇌]](四煩惱)를 일으킨다고 보기 때문이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2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07c20 T31n1585_p0007c20 - T31n1585_p0007c24]. 자상문(自相門)|ps=<br>"論曰。初能變識大小乘教名阿賴耶。此識具有能藏所藏執藏義故。謂與雜染互為緣故。有情執為自內我故。此即顯示初能變識所有自相。攝持因果為自相故。此識自相分位雖多。藏識過重是故偏說。"}}{{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2권. 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79 79-80 / 583]. 자상문(自相門)|ps=<br>"논하여 말한다.<sup style="color: blue">84)</sup> 첫 번째 능변식[初能變識]은 대승과 소승의 가르침에서 아뢰야식이라고 이름한다.<sup style="color: blue">85)</sup> 이 식에 구체적으로 능장(能藏){{.cw}}소장(所藏){{.cw}}집장(執藏)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능장{{.cw}}소장의 뜻은) 잡염법과 서로 연(緣)이 되기 때문이며, (집장의 뜻은) 유정(제7식)이 집착해서 자기 내면의 자아로 삼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초능변식에 있는 자체의 양상[自相]을 나타낸다.<sup style="color: blue">86)</sup> 원인{{.cw}}결과를 거두어 지녀서 자상을 삼기 때문이다. 이 식의 자상은 분위(分位)가 많지만 장식(藏識)이라 이름하는 것은, 첫 번째 지위이면서 과실이 크기 때문에 이에 비중을 두어 이름한 것이다.<sup style="color: blue">87)</sup>
<br><sup style="color: blue">84)</sup> 이하 제8식의 세 가지 체상[三相]을 총체적으로 설명한다.
<br><sup style="color: blue">85)</sup> 능변의 식[能變識]은 전변의 주체[能變]가 되는 식(識)이라는 뜻이다. 초능변식(初能變識:제8식)을 아뢰야식(阿賴耶識)ㆍ일체종자심식ㆍ이숙식(異熟識)ㆍ아타나식(阿陀那識)ㆍ심(心) 등으로 이름한다. 이들 명칭 중에서 아뢰야식(ālaya-vijñāna)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ālaya는 a-√lī(집착하다, 저장하다, 저장되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이 용어는 『숫따니빠따』{{.cw}}『증일아함경』 등 초기경전에서 ālaya는 ‘집착’, ‘애(愛){{.cw}}낙(樂){{.cw}}흔(欣){{.cw}}희(喜) 하는 집착의 대상’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비달마구사론』 제16권에는 탐욕{{.cw}}욕망 등과 나란히 열거되며,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16권에는 애욕의 의미로 사용된다. 유가유식학파에서는 집착의 근원적인 대상으로서 이 식을 들고―말나식이 아뢰야식을 상일주재(常一主宰)의 자아[我, ātman]로 착각해서 집착하므로―아뢰야식으로 명명하였다. 유식학파에서는 ‘집착’의 뜻 이외에 ‘저장’의 의미가 강조되었다. 접두어 a를 첨가한 것은 ‘무몰(無沒)’의 의미, 즉 이 식이 아득한 옛적부터 끊임없이 항상 작용하기[恒轉如暴流]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