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 (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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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불교교단이 확립된 [[부파불교]] 시대에서 성문은 [[출가자]]만을 뜻하게 되었고, [[대승불교]]에서 [[성문승]](聲聞乘){{.cw}}[[연각승]](緣覺乘){{.cw}}[[보살승]](菩薩乘)의 [[3승]](三乘)의 교의를 주장하면서 [[성문]]은 [[보살승]] 즉 [[보살의 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열한 탈것[乘] 즉 저열한 교법(敎法) 또는 저열한 길인 '''성문승'''(聲聞乘) 즉 '''성문의 길''' 즉 '''[[4제현관]]'''(四諦現觀: [[4성제]]의 [[현관 (불교)|현관]], [[4성제]]를 현전에서 [[현관 (불교)|관찰함]])을 의지하여 [[도 (불교)|성도]](聖道)를 나아가는 [[부파불교]]의 수행자로,{{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84%B1%EB%AC%B8%EC%8A%B9&rowno=1 聲聞乘(성문승)]".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聲聞乘(성문승):
3승의 하나. 성문 지위에 있는 이가 증과(證果)에 이르기 위하여 닦는 교법. 곧 고ㆍ집ㆍ멸ㆍ도의 4제법(諦法). 뒤에는 변해져서 성문의 기류(機類)도 성문승이라 함."}}{{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22908&DTITLE=%C1n%BBD%AD%BC 聲聞乘]".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聲聞乘:
 為二乘之一,三乘之一,五乘之一。指能成就聲聞果之四諦法門。乘,為運載之意,指能乘載眾生至彼岸者;即指佛陀之教法。聲聞之人由觀四諦之理而出離生死,以達涅槃,故稱四諦法門為聲聞乘。又指聲聞之機類。〔稱讚大乘功德經、法華玄論卷七、大乘法苑義林章卷一末〕(參閱「二乘」206) p6499"}} [[자리 (불교) 용어 목록/ㅈ#자리이타|자리]](自利) 즉 자신만의 [[깨달음]] 즉 자신의 [[열반]]의 [[증득]]에만 치중하는 수행자이며, 그 최고의 [[깨달음]]의 [[지위 (불교)|지위]]가 '[[아공]](我空)을 깨친 [[아라한]]'에서 그치고 마는 수행자를 뜻하게 되었다. 나아가 [[대승불교]]에서는 '''2종성문'''(二種聲聞){{.cw}}'''3종성문'''(三種聲聞){{.cw}}'''4종성문'''(四種聲聞) 또는 '''5종성문'''(五種聲聞)으로 성문의 성격을 세분하였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22907&DTITLE=%C1n%BBD 聲聞]".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聲聞:
 梵語 śrāvaka,巴利語 sāvaka。音譯舍羅婆迦。又意譯作弟子。為二乘之一,三乘之一。指聽聞佛陀聲教而證悟之出家弟子。大乘義章卷十七本解釋聲聞之名義有三,即:(一)就得道之因緣而釋,聞佛之聲教而悟解得道,稱為聲聞。(二)就所觀之法門而釋,如十地經論卷四說,我眾生等,但有名故,說之為聲,於聲悟解,故稱聲聞。(三)就化他之記說而釋,如法華經卷二信解品載說,以佛道聲,令一切聞,故稱聲聞。此三釋中,前二者為小乘之聲聞,第三則為菩薩,隨義而稱為聲聞。<br>
 聲聞原指佛陀在世時之諸弟子,後與緣覺、菩薩相對,而為二乘、三乘之一。即觀四諦之理,修三十七道品,斷見、修二惑而次第證得四沙門果,期入於「灰身滅智」之無餘涅槃者。聲聞乘,乃專為聲聞所說之教法。聲聞藏,則為闡述其教說之經典。<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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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선가귀감(禪家龜鑑)』(휴정)"</ref>
 
하지만 《[[품류족론]]》《[[발지론]]》《[[대비바사론]]》《[[구사론]]》 등의 [[부파불교]]의 [[아비달마]] 논서 어디에도 [[4제현관]](四諦現觀)을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주요 수행법으로 한다는 것외에는 성문에 대한 이러한 성격 규정과 분류는 존재하지 않으며,{{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22907&DTITLE=%C1n%BBD 聲聞]". 2013년 4월 9일에 확인}} 현대학자들도 '[[성문승]]{{.cw}}성문'과 '[[보살승]]{{.cw}}[[보살]]'간에는 후자가 [[자리불교 (불교)용어 목록/ㅈ#자리이타|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동시에 강조하는 반면 전자가 [[자리불교 (불교)용어 목록/ㅈ#자리이타|자리]](自利)에 치중한다는 측면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라고 본다.<ref name="종교학대사전-성문"/> 전통적으로도, [[대승불교]] 경전인 《[[법화경]]》 등에서는 [[3승]]의 구분은 [[방편설]](方便說)에 불과하며 진실로는 오직 [[1불승]](一佛乘) 즉 하나의 [[깨달음의 길]]만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ref name="글로벌-일불승">[[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불 교/불교의 사상#일불승|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초기 대승불교의 사상 > 일불승]],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br>"일불승:
一佛乘 소승의 2승에 대해서 대승불교가 스스로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 일불승 또는 일승(一乘)이다. 일불승은 불교의 진실한 가르침은 오직 한가지로서 그 가르침에 의해서 어떠한 사람들도 똑같이 성불(成佛)할 수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대승의 도에 따르는 수행자는 모두 석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살의 이름으로 불리고 석존이 전생에 무량(無量)의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쌓은 것처럼 대승의 보살들은 중생제도를 위하여 자신의 깨달음은 뒤로 돌리고 우선 다른 사람들을 구한다(自未得度先度他)고 하는 이타행(利他行)이 그 임무라고 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구제받지 못하는 한 스스로 이상의 세계로 들어가지 아니하고(無住處涅槃) 항시 현실세계에 있어서 세상을 위해 봉사한다는 입장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성문·연각의 2승도 역시 최종적으로는 부처가 되어야 할 것이며, 3승의 도를 구별하는 것은 사람의 자질이나 능력에 따라 방편설(方便說)에 불과하며 진실로는 오직 부처의 1승만이 있을 수 있다는 견해가 <법화경> 등에 의해 강조되며 그것이 일불승의 본의로 되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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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 등의 [[초기불교]] 경전에는 [[출가자]] 뿐만 아니라 [[재가신자]]도 모두 성문(聲聞)이라 불리고 있다. 즉 [[초기불교]] 시대에서 성문은 문자 그대로의 뜻 그대로 [[불제자]](佛弟子) 즉 '불교에 귀의한 사람'을 의미했다. 그 후 [[고타마 붓다]]의 [[입멸]] 후 후대에 불교교단이 확립되면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는 [[출가자]]만을 성문이라 부르게 되었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22907&DTITLE=%C1n%BBD 聲聞]". 2013년 4월 9일에 확인}}
 
이후 [[대승불교]]에서 [[성문승]](聲聞乘){{.cw}}[[연각승]](緣覺乘){{.cw}}[[보살승]](菩薩乘)의 [[3승]](三乘)의 교의를 주장하면서 [[성문]]은 [[보살승]] 즉 [[보살의 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열한 탈것[乘] 즉 저열한 교법(敎法) 또는 저열한 길인 '''성문승'''(聲聞乘) 즉 '''성문의 길''' 즉 '''[[4제현관]]'''(四諦現觀)을 의지하여 [[도 (불교)|성도]](聖道)를 나아가는 [[부파불교]]의 수행자를 뜻하게 되었다. [[대승불교]]에서는 [[부파불교]]의 수행자는 [[아라한]]을 목표로 하며 [[자리 (불교) 용어 목록/ㅈ#자리이타|자리]](自利) 즉 자신만의 [[깨달음]] 즉 자신의 [[열반]]의 [[증득]]에만 치중하는 수행자라고 보았고, 그 [[깨달음]]의 지위도 [[아공]]과 [[법공]]을 모두 깨달은 [[부처]]의 지위 즉 '[[부처의 다른 명칭]]으로서의 [[아라한]]'이 아니라 '[[아공]]의 [[도리]]만을 깨달은 [[아라한]]'의 [[지위 (불교)|지위]]에서 그치고 만다고 보았다.<ref name="글로벌-삼승"/><ref name="종교학대사전-성문"/> 이러한 이유로 [[대승불교]]에서 성문{{.cw}}[[성문승]]과 [[연각]]{{.cw}}[[연각승]]은 [[보살]]{{.cw}}[[보살승]]에 대해 폄하하는 호칭이 되었고, [[대승불교]]에서는 [[성문승]]{{.cw}}[[연각승]]의 [[2승]](二乘)을 [[저열한]] [[탈것]] 즉 [[저열한]] [[교법]] 또는 [[저열한]] 길이라는 뜻에서 [[소승]](小乘)이라 폄칭하였으며, 이에 따라 대승불교권에서는 [[성문]]과 [[성문승]]을 무조건 기피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ref name="종교학대사전-성문"/>
 
나아가 대승불교에서는 성문의 성격에 대해 여러 가지로 구분하여, '''2종성문'''(二種聲聞){{.cw}}'''3종성문'''(三種聲聞){{.cw}}'''4종성문'''(四種聲聞) 또는 '''5종성문'''(五種聲聞)으로 분류하였다. 이 가운데 2종성문은 성문을 '''정성성문'''(定性聲聞){{.cw}}'''부정성성문'''(不定性聲聞)으로 구분하는 것인데, [[정성성문]]은 성문으로서의 성격[性]이 고정[定]되어서 [[성문승]] 즉 [[성문의 길]]에서 [[보살승]] 즉 [[보살의 길]]로 들어갈 여지가 없는 수행자를 말하고, [[부정성성문]]은 아직 성문으로서의 성격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보살승]] 즉 [[보살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성문이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22907&DTITLE=%C1n%BBD 聲聞]". 2013년 4월 9일에 확인}}<ref name="종교학대사전-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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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승]]의 교의와 성문에 대한 이러한 분류는 모두 [[대승불교]]에 의한 것으로, 《[[품류족론]]》《[[발지론]]》《[[대비바사론]]》《[[구사론]]》 등의 [[부파불교]]의 [[아비달마]] 논서 어디에서도 [[4제현관]](四諦現觀)을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주요 수행법으로 한다는 것외에는 성문에 대한 이러한 성격 규정이나 분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성문에는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특히 불교의 근본 교의인 [[4성제]]에 따라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 수행에 전념하는 [[출가 수행자]]라는 의미만이 있을 뿐이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22907&DTITLE=%C1n%BBD 聲聞]". 2013년 4월 9일에 확인}}
 
현대학자들도 성문의 길 즉 '[[부파불교]]의 수행자의 길 또는 [[방편]]'인 [[4제현관]]과 그 계위인 [[성문4과]]는 [[보살의 길]] 즉 '[[대승불교]]의 수행자의 길 또는 [[방편]]'인 [[6바라밀]]과 그 계위인 [[보살 10지]]와 마찬가지로 깊은 수행을 요구하며 그 경지가 높은 것으로, 모두 [[부처의 지위]] 즉 [[열반]]에 이르기 위한 길이라고 본다. 이에 따라, 성문과 보살은 모두 [[불제자]]이지만 [[보살]]에는 다른 [[중생|유정]]을 위한 실천 즉 [[이타]](利他)가 있어 [[자리불교 (불교)용어 목록/ㅈ#자리이타|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동시에 강조하는 반면, 성문은 [[자리불교 (불교)용어 목록/ㅈ#자리이타|자리]](自利) 즉 자신의 [[깨달음]] 즉 [[열반]]의 [[증득]]에 치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본다.<ref name="종교학대사전-성문"/>
 
또한, 이러한 취지의 전통적인 견해 역시 존재하는데, [[대승불교]]의 경전인 《[[법화경]]》 등에서는 성문{{.cw}}[[연각]]의 [[2승]]의 수행자도 역시 최종적으로는 [[부처]]가 되며, [[도 (불교)|성도]](聖道) 즉 '[[불교]]라는 길'을 [[성문승]]{{.cw}}[[연각승]]{{.cw}}[[보살승]]의 [[세 가지 길]]로 구별하는 것은 수행자의 자질이나 능력에 따라 시설된 [[방편설]](方便說)에 불과하며 진실로는 오직 [[1불승]](一佛乘) 즉 하나의 [[불승]] 즉 하나의 [[깨달음의 길]]만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ref name="글로벌-일불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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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리이타|불교 용어 목록/경#교화|l2=교화}}
 
[[고타마 붓다]]의 [[입멸]] 후 후대에 불교교단이 확립되면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는 [[출가자]]만을 성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수행자들이 [[자리불교 (불교)용어 목록/ㅈ#자리이타|자리]](自利) 즉 자신의 [[열반]]의 [[성취]]에만 치중하는 것에 반대하여 [[자리불교 (불교)용어 목록/ㅈ#자리이타|자리]](自利)와 [[이타]](利他) 즉 [[열반]]에 이르기 위한 [[삼도|수행]]과 다른 [[중생|유정]]을 위한 [[보시]]의 실천을 함께 실행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대승불교에서는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실천하는 [[보살]]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고, [[성문승]]{{.cw}}[[연각승]]{{.cw}}[[보살승]]의 [[3승]]의 교의를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대승불교권에서는 이 [[3승]]의 교의에서 정의하는 [[성문승]]의 수행자를 성문이라 부르게 되었다.<ref name="글로벌-삼승"/><ref name="종교학대사전-성문"/>
 
[[대승불교]]의 [[3승]]의 교의에 따르면, '''성문승'''(聲聞乘)은 [[4제현관]](四諦現觀) 즉 고제{{.cw}}집제{{.cw}}도제{{.cw}}멸제의 [[4성제]]를 [[현관 (불교)|현전에서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즉, [[성문승]]이란 [[열반]]의 [[증득]]에 이르는 탈것 즉 길 또는 방편으로서의 [[4제현관]]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문승]]의 수행자인 '''성문'''은 열반을 증득하는 수행으로써 [[4제현관]]을 닦는 이를 말하는데, 이들은 특히 [[이타]](利他)는 고려하지 않고 [[자리 (불교) 용어 목록/ㅈ#자리이타|자리]](自利)에만 치중한다는 성격을 가진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84%B1%EB%AC%B8%EC%8A%B9&rowno=1 聲聞乘(성문승)]".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聲聞乘(성문승):
3승의 하나. 성문 지위에 있는 이가 증과(證果)에 이르기 위하여 닦는 교법. 곧 고ㆍ집ㆍ멸ㆍ도의 4제법(諦法). 뒤에는 변해져서 성문의 기류(機類)도 성문승이라 함."}}{{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22908&DTITLE=%C1n%BBD%AD%BC 聲聞乘]".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聲聞乘:
 為二乘之一,三乘之一,五乘之一。指能成就聲聞果之四諦法門。乘,為運載之意,指能乘載眾生至彼岸者;即指佛陀之教法。聲聞之人由觀四諦之理而出離生死,以達涅槃,故稱四諦法門為聲聞乘。又指聲聞之機類。〔稱讚大乘功德經、法華玄論卷七、大乘法苑義林章卷一末〕(參閱「二乘」206) p6499"}}<ref name="종교학대사전-성문"/>
 
그리고, [[대승불교]]의 [[3승]]의 교의에 따르면, [[연각승]](緣覺乘)은 [[12연기]]를 [[현관 (불교)|현관]]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연각]](緣覺) 또는 [[독각]](獨覺)은 [[고타마 붓다]]의 무사독오(無師獨悟) 즉 [[고타마 붓다]]가 스승에 의하지 아니하고 혼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을 나타내는 말인데, [[대승불교]]의 [[3승]]의 교리에서는 [[연각승]]의 수행자 즉 홀로 [[12연기]]를 관찰하여 [[미혹]]을 끊고 [[진리 (불교)|진리]]를 깨닫는 이로서, 성문과 마찬가지로 [[자리 (불교) 용어 목록/ㅈ#자리이타|자리]](自利)에만 치중하는 이들을 말한다.<ref name="종교학대사전-성문"/>{{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7%B0%EA%B0%81%EC%8A%B9&rowno=1 緣覺乘(연각승)]".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緣覺乘(연각승):
2승의 하나. 연각의 깨닫는 경지에 도달하는 탈 물건(敎法)이란 뜻. 12인연(因緣)의 법. 또는 연각의 경지에 있는 사람."}}{{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21306&DTITLE=%BDt%C4%B1%AD%BC 緣覺乘]".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緣覺乘:
 梵語 pratyekabuddha-yāna。指到達緣覺果之法門,亦即指十二因緣之法。由此義,亦將緣覺之機類直接稱為緣覺乘。又作辟支佛乘、獨覺乘。為二乘之一,三乘之一,五乘之一。即觀察十二因緣之理,以期於一向一果中入於涅槃者。(參閱「二乘」206) p6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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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施)의 하나.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 두려워 하는 마음이 없게 하는 것. ⇒보시(布施)"}}가 있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B%B3%B4%EC%8B%9C&rowno=5 報施婆羅蜜(보시바라밀)]".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報施婆羅蜜(보시바라밀):
6바라밀의 하나. 재물보시ㆍ법보시ㆍ무외보시 따위의 대행(大行). 이 대행은 나고 죽는 이 언덕에서 불생불멸하는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배와 같으므로 바라밀이라 함."}}{{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B%B3%B4%EC%8B%9C&rowno=4 布施(보시)]".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布施(보시):
【범】dāna 단나(檀那)라 음역. (1) 6바라밀의 하나. 자비심으로써 다른 이에게 조건 없이 물건을 줌. 이것을 재시(財施). 보시는 재시ㆍ법시ㆍ무외시(無畏施)의 3종으로 나누며, 또 4종, 5종, 7종, 8종으로 나누기도 한다. ⇒재시(財施)ㆍ법시(法施)ㆍ무외시(無畏施) (2) 4섭법(攝法)의 하나. 보살이 재시ㆍ법시로써 중생을 섭수(攝受)하여 화도(化導)하는 것. (3) 지금은 흔히 신도들이 스님들에게 독경을 청하거나 불사를 행하고 보수로 금전이나 물품을 주는 것을 보시라고 말한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3승]]의 교의에 따르면 [[보살]]은 성문과 [[연각]]과는 달리 자신과 남의 [[깨달음]] 즉 [[자리 (불교) 용어 목록/ㅈ#자리이타|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동시에 추구하는 수행자이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B%B3%B4%EC%82%B4%EC%8A%B9&rowno=1 菩薩乘(보살승)]".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菩薩乘(보살승):
3승의 하나. 성불하기를 이상(理想) 목적으로 삼는 보살들이 수행하는 6도(度) 등의 법문. 승(乘)은 싣고 옮겨 가는 뜻, 이 법문은 보살로 하여금 번뇌의 세계를 벗어나, 이상(理想)의 불과에 이르게 하므로 이렇게 이름함. 그러므로 보살의 기류(機類)를 바로 보살승이라고 함. ⇒범승(梵乘)"}}{{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7743&DTITLE=%B5%D0%C2%C4%AD%BC 菩薩乘]".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菩薩乘:
 梵語 bodhisattva-yāna。三乘之一,五乘之一。又稱佛乘。乘,運載之意。以悲智六度法門為乘,運載眾生,總越三界三乘之境,至無上菩提大般涅槃彼岸,如乘舶過海,故稱菩薩乘。或有直稱菩薩之機類為菩薩乘。〔法華玄論卷七、大乘法苑義林章卷一末、華嚴五教章卷一、觀經疏玄義分傳通記卷二〕(參閱「三乘」593、「五乘」1126) p5220"}}{{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8459&DTITLE=%A5%AC%ACI 布施]".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布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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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據菩薩善戒經卷一序品載,在家菩薩行財施與法施;出家菩薩行筆施、墨施、經施、說法施等四施;而得無生忍之菩薩則具足施、大施、無上施等三施。俱舍論卷十八舉出八種布施,即:隨至施、怖畏施、報恩施、求報施、習先施、希天施、要名施、為莊嚴心等施。同書卷十八亦舉出施客人、施行人、施病人、施侍病者、施園林、施常食、隨時施等七種布施。舊譯華嚴經卷十二「十無盡藏品」則有修習施、最後難施、內施、外施、內外施、一切施、過去施、未來施、現在施、究竟施等十施。上述乃就布施行為之內容、態度、目的等之不同,而有種種分類方式。又施者、受者、施物三者本質為空,不存任何執著,稱為三輪體空、三輪清淨。〔中阿含卷三十福田經、增一阿含經卷四、卷九、卷二十、大般若波羅蜜多經卷四六九、卷五六九、菩薩地持經卷四、布施卷、大智度論卷十四、卷二十九、瑜伽師地論卷三十九〕(參閱「達嚫」5677) p1901"}}
 
그리고, 대승불교에서는 이러한 3승의 교의에 의거하여, 성문과 연각이 [[자리 (불교) 용어 목록/ㅈ#자리이타|자리]](自利)에만 치중하는 수행자로서, 이러한 태도에 의해 결과적으로 [[아공]](我空)의 이치만을 깨달을 수 있을 뿐 [[법공]](法空)의 이치는 깨닫지 못한다고 보았다. 즉, 성문과 연각이 완전히 깨달았다고 하는 상태는 단지 [[아공]](我空)의 이치만을 깨달은 상태일 뿐으로 [[부처]]의 상태가 아니며 따라서 그들이 이상으로 하고 있는 [[아라한]]이란 '[[부처]]의 다른 명칭으로서의 [[아라한]]'이 아니라 [[아공]](我空)의 이치만을 깨달은 [[성인 (불교)|성자]]일 뿐이라고 보았다. 이에 따라 [[대승불교]]에서는 [[성문승]](聲聞乘){{.cw}}[[연각승]](緣覺乘)의 [[2승]](二乘)으로는 '[[아라한]]' 즉 '[[아공]](我空)의 이치는 완전히 깨달은 [[성인 (불교)|성자]]'는 될 수 있어도 '[[아공]]과 [[법공]]을 모두 깨달은 [[성자]]'인 [[부처]]는 영원히 될 수 없다고 보아, [[부처]]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길 즉 [[아공]]과 [[법공]]을 모두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길로서의 자신들의 [[보살승]]과 구별하였고, [[성문승]]{{.cw}}[[연각승]]의 [[2승]](二乘)을 통칭하여 [[소승]](小乘)이라고 폄칭하였다.<ref name="종교학대사전-성문"/>{{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5%B0%8F%E4%B9%98&rowno=1 小乘(소승)]".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小乘(소승):
↔대승. 승(乘)은 싣고 운반하는 뜻. 사람을 태워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교법. 이 교법 중에서 교(敎)ㆍ리(理)ㆍ행(行)ㆍ과(果)가 모두 심원(深遠) 광대하고, 따라서 수행하는 이도 대기이근(大器利根)인 기류(機類)를 요하는 것을 대승이라 하고, 이에 반대되는 것을 소승이라 함. 소승에는 성문승ㆍ연각승 둘이 있다. (1) 성문승. 4제(諦)의 이치를 관하여 성문의 4과(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함. (2) 연각승. 12인연을 관하여 벽지불과(辟支佛果)에 이르는 것을 교체(敎體)로 함. 이것은 모두 회신멸지(灰身滅智)의 공적한 열반에 이르는 것을 최후 목적으로 여김. 인도의 상좌부ㆍ대중부 등의 20분파와 동토의 구사종ㆍ성실종ㆍ율종 등."}}{{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942&DTITLE=%A4G%AD%BC 二乘]". 2013년 4월 9일에 확인|ps=<br>"二乘:
 乘為運載之意。運載眾生度生死海之法,有二種之別,故稱二乘。(一)指大乘與小乘。佛陀一代所說之教法可大別為大、小二乘。佛為聲聞、緣覺所說之法稱小乘,佛為菩薩所說成佛之法稱大乘。〔北本大般涅槃經卷十四聖行品、梁譯攝大乘論卷上〕<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