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법조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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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에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역임하였다. [[임채진]]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3차장 검사를 지냈고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지냈다. [[2003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으로서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을 맡아 [[최태원 (기업인)|최태원]] 회장을 구속했다. 이어 대선자금 수사팀에 합류해 대기업의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을 수사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맡았으며, 주변인물, 일가족을 차례 차례 소환하고 수사 현황은 실시간 언론에 공개되었다.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 일가가 고가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등 허위 사실이 매체에 유포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다. 권력에 대하여는 형식적으로만 수사하면서 죽은 권력에 대해서만 먼지털이식으로 수사를 진행하였다는 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2009년 6월 기수와 서열을 파괴하고 [[천성관]](사법시험 22회)이 검찰총장에 내정된 이후 고검장급 8명이 모두 공식 사임하거나 사의를 표시하였고, 그는 [[2009년]] [[7월 14일]]에 퇴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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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
[[이명박]]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이명박이 지난 [[1999년]]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검찰 파견직으로 워싱턴 영사관에서 일하며 당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신재민]]의 소개로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ref>[http://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6016173d&ltype=1&nid=000&sid=0001&page=1 한국경제 - 이인규 중수부장, 이젠 정치권의 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1999년부터 각별한 인연, 국정원장은 임 검찰총장 무시하고 이 중수부장에게 메시지 전달]</ref> [[신재민]]은 [[조선일보]]를 거쳐,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임명되고, 이인규는 검찰 요직인 중수부장에 임명되어 모두 정권의 실세로 등장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이번 수사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은 배제되고 이 부장이 청와대와 직접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는 소문도소문이 돌기도 했다돌았다.
 
==인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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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3일 민주당 김동철 의원이 공개한 '사건위임계약서'에 따르면 법무법인 '바른' 소속인 정동기 전 민정수석과 이인규는 2011년 4월 부산저축은행의 변호를 맡는 조건으로 착수금 3억원을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두 사람의 의뢰인은 부산저축은행그룹 박연호 회장, 김민영 부회장, 김양 부회장, 강성우 감사 등 4명이었다. 정동기와 이인규는 최고 9억원대의 성공보수도 약속받았던 것으로 나타나 전관예우 논란이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은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터진 뒤 피해자들이 "부도덕한 사람을 변호하는 것이 잘하는 일이냐"고 항의하자 뒤늦게 변호계약을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1월 이인규와 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우병우 당시 중수 1과장이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으로 내정되는 일이 일어나자, 이인규는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한 진술은 국정원의 조작이었고조작이었으며, 국정원이 일부 사실을 과장하여 언론에 흘렸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국정원의 행태는 공작 수준이었다고 기자들에게 말하였다밝혔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250600065&code=940301 원세훈 때 ‘노무현 죽이기’… “국정원 행태, 빨대(익명 취재원) 아닌 공작 수준”, 경향신문]</ref><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250600075&code=940301 이인규 “국정원, 노무현 수사 내용 과장해 언론에 흘렸다”, 경향신문]</ref>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