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동 백송: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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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력 ==
언제 어떻게 이 자리에 백송이 있게 되었는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이곳에 헌법재판소가 들어서기 이전에는 [[창덕여자고등학교]]의 구내에 있는 백송이었고 구한말에는 [[신정왕후 (조선)|신정왕후]]의 친정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아들 [[조선 헌종|헌종]]의 즉위로 왕대비가 되고 [[조선 철종|철종]] 때 대왕대비로 진봉된 신정왕후의 친정에는 [[흥선대원군]]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를 종식시키고 왕권을 다시 강화하려는 모의가 이 백송이 지켜보는 사랑채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무렵 백송의 밑둥이 별나게 희어져 대원군이 성사를 확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