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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기와 수학 ====
첫 부인 김씨(金氏)와 혼인했으나 사별하고 [[남인]]학파 예학의 대가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딸 진주정씨(晋州鄭氏)와 결혼하여 2남 3녀를 두었다. [[정경세]]는 영남의 유학자 중에서도 예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인물로 퇴계 [[이황]]의 제자인 서애 [[유성룡류성룡]]의 문인이었다. 이후 장인인 [[정경세]]의 문하에도 출입하면서 수학한다.<ref>이때의 경험으로 남인에 대해 일부 호의를 보이기도 했다.</ref>
 
[[김장생]] 못지 않게 정경세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송준길이 [[정경세]](鄭經世)가 죽자 사위이기도 했지만, 스승의 예로서 사제의 복을 입었다. 사계가 별세하자 그 아들 신독제 [[김집 (1574년)|김집]]에게 배웠다. 송준길의 명민함은 유별하며 글씨를 잘 썼다. 당대 선배 명필 이시직이 일찍이 말하기를 "네가 이미 나보다 낫다."고 경탄했다. [[광해군]] 시절 소년기였으나 광해군 조정이 어지러운 조정이라 인식한 그는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