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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은 [[남강 (경상도)|남강]]을 끼고, 외성의 둘레를 4km로 쌓고, 내성의 둘레는 1.7km에 이른다. 성내(城內)에는 촉석루·창열사·의기사·북장대·서장대·영남포정사·국립진주박물관·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촉석문·공북문·호국사 등이 소재해 있다.
성곽의 둘레는 1,760m이고 성 안에는 [[촉석루]], [[의기사]], 영남포정사, 북장대, 서장대, [[
== 연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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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은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역사의 보고이며, 아름다운 남강과 절벽에 지어진 진주성과의 잘 조화된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건축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진주성 내에는 정문인 촉석문과 후문인 공북문, 그리고 망루인 촉석루와 서장대, 북장대를 비롯하여 사찰로는 호국사가 있고, 사당으로는 하공진 장군을 모신 경절사, 충절의 여인 논개를 모신 의기사, 임진왜란 때 전몰한 순국영령들을 모신
|url = http://tour.jinju.go.kr/01/01_01.php?pT_idx=9
|제목 = 진주성 유적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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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hangRyeol shrine.jpg|thumb|250px|임진왜란 순국영령을 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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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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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국사 ===
{{참고|호국사 (진주시)}}
전통 사찰 제70호로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원래 이름은 내성사(內城寺)였다. 고려 말에 왜구를 막기 위한 승병을 기르기 위해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때는 승군(僧軍)의 근거지가 되었다.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 때 호국사(護國寺)란 이름으로 재건하였다고 전한다. 호국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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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4호 || [[북장대 (진주성)|북장대]] || 北將臺 || [[1983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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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5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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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6호 || [[서장대]] || 西將臺 || [[1983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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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orea-Jinju-Jinju.Fortress-01.jpg|정문인 촉석문
파일:Nongae Shrine.jpg|논개사당 의기사
파일:ChangRyeol shrine.jpg|순국영령을 모신
파일:Jinju castle-outside.jpg|외부에서 본 진주성곽
파일:Seojangdae2-Jinju Castle.jpg|절벽위의 서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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