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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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정보
|명칭 = 남조선대한민국 국군
|문장 = Emblem of the Armed Forces of the Republic of Korea.png
|그림=
|설명 =
|창립일 = 1939년 3월 1일([[한국독립당]] 당군)<br /> 1940년 9월 17일([[한국 광복군]])<br /> 1948년 8월 15일(남조선대한민국 국군)
|국적 = {{국기나라|남조선대한민국}}
|편제 = {{육군|남조선대한민국}}<br/ > {{해군|남조선대한민국}}<br/ > {{공군|남조선대한민국}}<br/ > {{해병대|남조선대한민국}}
|충원방식 = [[징병제]]
|명령체계 = [[남조선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본부 = {{국기나라|남조선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병력 = 63만 9,000명 ([[2014년]])
|예비군 = 427만 명<br/>
* [[남조선대한민국 예비군|예비군]]
* [[남조선대한민국 민방위대|민방위대]]
|통수권자 = [[박근혜]]
|국방장관 = [[한민구]]
|합참의장 = [[이순진]]
|예산 = 40조 4,766억 [[남조선대한민국 원|원]]([[2015년]] 기준)
|GDP 대비 = 2.7% (2014)
|정부재정대비 = 14.3% (2014)
|군사비 기타 = 남조선의대한민국의 주한미군 분담금: 약 9,200억 [[남조선대한민국 원|원]]([[2014년]]. 전액 [[남조선대한민국 원|원화]] 부담)
|국내 공급 = [[LIG넥스원]]<br/>[[LS그룹]]<br/>[[S&T모티브]]<br/>[[S&T중공업]]<br/>[[STX조선해양]]<br/>[[금호타이어]]<br/>[[기아자동차]]<br/>[[대우조선해양]]<br/>[[대한항공]]<br/>[[두산그룹]]<br/>[[두산중공업]]<br/>[[두산인프라코어]]<br/>[[포스코]]<br/>[[한국항공우주산업]]<br/>[[한진중공업]]<br/>[[한화그룹]]<br/>[[한화테크윈]]<br/>[[현대중공업]]<br/>[[현대로템]]<br/>[[현대위아]]<br/>[[효성그룹]]
|해외 공급 = {{국기나라|네덜란드}}<br/>{{국기나라|독일}}<br/>{{국기나라|러시아}}<br/>{{국기나라|미국}}<br/> {{국기나라|스페인}}<br/>{{국기나라|영국}}<br/>{{국기나라|이스라엘}}<br/>{{국기나라|이탈리아}}<br/>{{국기나라|터키}}<br/>{{국기나라|프랑스}}<br/>{{국기나라|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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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 http://www.mnd.go.kr/
}}
'''남조선대한민국 국군'''(大韓民國 國軍, {{llang|en|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은 1948년 8월 15일에 창설된 [[남조선대한민국]]의 [[군대]]이다.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육군]], [[남조선대한민국 해군|해군]], [[남조선대한민국 공군|공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설 후 [[한국 전쟁]]을 거쳐 1964년에는 [[월남전]]에 파병, 1973년 철수 때까지 20만 명이 참전하였다. 그 외에도 1991년 [[걸프전]], 1993년 소말리아, 1999년 동티모르에 세계평화유지를 위해 파병되었다. 창설 당시 국군의 모든 지휘권은 [[남조선대한민국 정부]]에 있었으나 [[한국 전쟁]]당시에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 에게 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을 이양하고, 1978년 7월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서 유엔군 사령부에 있었던 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로 이양되었다. 1992년에 지상군 사령부에 대한 지휘권이, 1994년에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게 환수되었다.
 
== 병력 ==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은 병력 약 52만명, [[전차]] 약 2300 대, [[장갑차]] 약 2500대, 견인포/다연장 로켓 약 5200문, 유도무기 약 30기, 헬기 약 600기를 보유하고 있다.<ref>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2> "육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1쪽</ref>
 
[[남조선대한민국 해군]](예하 [[남조선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만 8천명, [[잠수함]] 약 20척, 전투함정 약 140척, 지원함정 20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50대를 보유하고 있다.<ref>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3> "해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2쪽</ref>
 
[[남조선대한민국 공군]]은 병력 약 6만 5천명, 전술기 460대, 감시통제기 약 40대, 공중기동기 약 40대, 훈련기 180대, [[헬기]] 약 40대를 보유하고 있다.<ref>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4> "공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3쪽</ref>
 
[[2012년]] 1월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육군]]에는 현재 39개 [[사단 (군사)|사단]](전방 [[기계화보병]][[사단 (군사)|사단]] 6개<ref name="ReferenceA">[[남조선대한민국 수도기계화보병사단|수도]], [[남조선대한민국 8기계화보병사단|8]], [[남조선대한민국 11기계화보병사단|11]], [[남조선대한민국 20기계화보병사단|20]], [[남조선대한민국 26기계화보병사단|26]], [[남조선대한민국 30기계화보병사단|30]]</ref>, 그 외 상비[[사단 (군사)|사단]] 16개, 향토 방위 12개, [[동원 예비군]] 5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남조선대한민국 해군|해군]] 예하 [[남조선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 2개 [[사단 (군사)|사단]]이 있다. [[2020년]]까지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며, 5개의 지역[[군단]]([[수도방위사령부]]도 지역군단으로 함)과 2개의 기동[[군단]]으로 개편하고, 향토사단 자체는 존치하며, 동원사단은 4개로 줄이는 중이다.
 
== 지휘권 ==
=== 지휘, 통수권 ===
* [[1950년]] 7월, 국군의 모든 지휘권과 작전 통제권은 한국전쟁(6.25전쟁) 당시에 [[유엔군 사령관]]에게 영구적으로 이양 되었으나 [[1992년]]에 평시작전통제권 중 지상군 사령부에 대한 지휘권이, [[1994년]]에는 나머지 평시작전통제권 전부가 국군에 이양되었다.
* [[2012년]] 4월 12일에는 [[전시 작전통제권]]도 국군에 이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0년]] 6월 27일, [[이명박]] [[남조선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과 [[미국]] [[오바마]] [[미국 대통령|대통령]]은 [[2015년]] 12월로 연기하기로 합의하였다. 그 이유는 [[2010년]] 3월 26일 남조선대한민국 해군 함정 [[천안함]] 이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북한군 반잠수정에 의해 침몰된 사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재연기는 없는 것으로 하였으나 2014년 10월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남조선과대한민국과 미국의 국방부 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정하지 않고 2020년대 중반에 전환 여부를 검토한다고 합의하여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였다.
 
=== 지휘 권한 ===
* [[남조선대한민국]]의 [[남조선의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거하여 남조선대한민국 국군(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등)을 통솔한다.
* [[남조선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장관]]은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받아 군사에 관한 사항을 정리하고 [[합동참모의장]]과 각군의 [[참모총장]]을 지휘·감독하고, 모든 군에게 명령을 직접 지휘하고 하달한다.
* 합동참모의장은 군령에 관하여 [[남조선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장관]]을 보좌하며, [[남조선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각군의 작전부대를 작전지휘·감독하고, 합동작전의 수행을 위하여 설치된 합동부대를 지휘·감독한다.
*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육군]]에 육군참모총장, [[남조선대한민국 해군|해군]]에 해군참모총장, [[남조선대한민국 공군|공군]]에 공군참모총장을 두며, 각군 참모총장은 [[남조선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각 군을 지휘·감독하나,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작전부대에 대한 작전지휘·감독은 제외된다.
* [[남조선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는 해군 산하로, [[남조선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에 해병대 사령관을 두며, 해병대사령관은 해군참모총장의 명을 받아 해병대를 지휘·감독하며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사령관을 겸직한다.
 
== 군사 조직 ==
* [[남조선대한민국 육군]](大韓民國 陸軍, Republic of Korea Army, '''ROKA''')
* [[남조선대한민국 해군]](大韓民國 海軍, Republic of Korea Navy, '''ROKN''')
** [[남조선대한민국 해병대]](大韓民國 海兵隊, 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 '''ROKMC''')
** [[남조선대한민국 해양경비안전본부]](大韓民國 海洋警備安全本部, Korea Coast Guard, '''KCG''')
* [[남조선대한민국 공군]](大韓民國 空軍, Republic of Korea Air Force, '''ROKAF''')
* [[남조선대한민국 예비군]](大韓民國豫備軍, Republic of Korea Reserve Forces, '''ROKRF)
* [[남조선대한민국 민방위대]](大韓民國民防衛隊, Republic of Korea Civil Defense Corps, '''ROKCDC''')
 
== 역사 ==
남조선대한민국 국군의 기원은 [[1945년]] [[10월]] 편성된 [[미군정]]의 통위부 소속 조선국방경비대에 기원을 둔다. 그러나 다른 한 축으로는 일제 강점기의 의병과 [[1940년]] [[9월 17일]] [[중국]] [[쓰촨성]]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 광복군]]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광복군]]에 뿌리를 둘 경우 [[1939년]] [[3월 1일]]에 결성된 [[한국독립당]]의 당군이 사실상 남조선대한민국 국군의 기원이자, 전신이다.
 
그러나 사실상 광복군은 [[중화민국]] [[중국 국민당|국민당 군]]의 지휘를 받는 수준이었으며, [[1942년]]부터 귀순공작을 펴서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을 받아들였으며, [[미군]]과의 OSS합동훈련인 '국내 진공 진압 작전'을 기획했고, 귀국 후에는 구 [[일본군]] 인맥과 [[만주군]] 인맥들이 주축이 되어 조선국방경비대를 결성, 현대 국군의 모태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군]]과 [[남조선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을 기원으로 삼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의 시작은 [[남조선국방경비대]]와 [[미군정]]이 설립한 [[군사영어학교]]가 모태이다. 국방부는 1948년 12월 15일, 8명의 중령([[백선엽]], [[이용무]], [[양국진 (1916년)|양국진]], [[최덕신]], [[김백일 (1917년)|김백일]], [[유재흥]], [[신학진]], [[박동균 (1919년)|박동균]])을 대령으로 특진발령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812310020920203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8-12-31&officeId=00020&pageNo=2&printNo=7787&publishType=00020|제목=陸軍八中領昇進 |출판사=동아일보 |날짜=1948-12-3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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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움트기 시작했다. 과거 [[일본군]]·[[만주국 육군|만주국군]]·[[중화민국|중국군]] 등에 소속하였던 군사 경험자들은 조국의 광복(1945.8.15)과 때를 같이하여 군사단체를 조직했다.
 
[[남조선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1945년]] 8월 23일)·국군준비대·육해공군 동지회·학병동맹·해방병단(海防兵團)([[1945년]] 11월 11일) 등이 결성되었으나, [[1945년]] 11월 13일 미 군정 [[:s:군정법령 제28호|법령 28호]]로 아놀드 군정장관 지휘하에 국방사령부가 설치되자 앞서 발족한 여러 군사단체들이 서서히 하나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 국방사령부의 설치는 국군 창설의 최초의 시도로서 이때부터 비로소 [[남조선대한민국]]의 국방을 위한 조직·편성·훈련이 착수되었다. 최초로 국군의 기간장교가 육성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12월 5일]]에 [[미군정청]](美軍政廳)이 군사영어학교를 설치하여 11명의 요원을 배출하는 때부터였다.
 
[[1946년]] [[1월 15일]]에는 불과 1개 대대의 병력으로 남조선 경비대(초대 대장 [[마셜]] [[미국 육군|미 육군]]중령)가 창설되었으며, [[1946년]] [[3월 29일]] 공포된 미 [[:s:군정법령 제64호|군정법령 제64호]]에 따라 국방사령부가 [[남조선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로, [[1946년]] [[6월 15일]]에는 [[:s:군정법령 제86호|군정법령 86호]]에 따라 [[남조선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는 다시 통위부(統衛部)로 개칭되었다(초대 통위부 부장 [[유동열]], 초대총사령관 [[송호성]]).
 
이 때부터 통위부 밑에 조선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가 창설되었으니, [[1946년]] [[1월 15일]]자로 발족했던 남조선 경비대는 국방경비대로, 그리고 [[1945년]] [[11월 11일]] 발족했던 해방병단은 해안경비대로 각각 발전하였다. 그해 [[12월 1일]]에는 현행 계급제도가 채택되었으며, [[1948년]] [[4월 1일]]에는 국방경비대 안에 항공부대가 창설되었다.
 
[[1948년]] [[7월 17일]]에 남조선대한민국 헌법과 정부조직법이 공포됨에 따라 초대 국방장관에 [[이범석 (군인)|이범석]] 장군이 임명되었고, [[8월 29일]]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는 국군으로 편입되어 [[9월 5일]] 마침내 육군(초대 참모총장 [[이응준 (군인)|이응준]]) 및 해군(초대 참모총장 [[손원일]])이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이후 육군에서 공군과 해군이 나뉘고, 해군에서 해병대가 창설 되면서 현재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한편 [[1948년]] [[4월 1일]] 국방경비대 안에 창설되었던 항공부대는 [[9월 13일]] 육군 항공사령부로 승격하고 [[1949년]] [[10월 1일]] 육군으로부터 군이 분리되어 공군(초대 참모총장 [[김정렬 (1917년)|김정렬]])으로 정식 발족함으로써 비로소 3군 체제형성의 발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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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전쟁(6.25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
{{참조|한국 전쟁}}
[[한국전쟁]] 초기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은 동부전선의 이성가, [[김종오]] [[대령]]이 지휘하는 [[남조선대한민국 8보병사단]], [[남조선대한민국 6보병사단]]이 선전을 했으나, 서부전선의 경우 고전을 치러야 했다. [[옹진반도]]를 방어하던 [[육군본부|남조선대한민국 육군참모본부]] 직할 17연대([[백인엽]] 지휘)는 개전 직후 철수했으며, [[청단]]-[[개성특급시|개성]]-[[문산]]을 방어하던 [[남조선대한민국 1보병사단|1사단]]([[백선엽]] 지휘)은 동년 동월 27일까지 효과적으로 방어를 하였으나, 우측의 [[남조선대한민국 7보병사단|7사단]]이 괴멸하여, [[서울]]이 점령됨에 따라 [[한강]] 이남으로 철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남조선대한민국 1보병사단|1사단]]도 전투력의 60%이상을 상실하였으나 건제를 유지하였다. 의정부-포천축선을 방어하던 [[제7보병사단 (남조선대한민국)|7사단]]의 경우 [[의정부]]지구 1연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포천축선의 9연대가 괴멸되고 이에 축차투입된 [[수도경비사령부]](현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3군사령부]] 예하[[수도기계화보병사단]]) 3연대, 2사단, 5사단도 붕괴됨으로써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에 [[중국 국부군]] 2성 장군 출신의 [[김홍일 (1898년)|김홍일]] 장군이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조직하여 혼성 사단을 조직 한강선을 7일간 방어함으로써 미군이 전개할 시간을 얻었다. 50년 7월 5일과 7월 24일에 단행된 사단 재편성을 거쳐 해체되지 않고 유지되는 사단은 1사단, 6사단, 8사단 이상 3개 사단이며 [[남조선대한민국 3보병사단|3사단]]은 7월 5일부로 해체되었으나, 예하 22, 23연대의 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7월 24일부 다시 사단이 구성된다. 상기 4개사단 (1, 3, 6, 8사단)을 제외한 나머지 사단 ([[남조선대한민국 2보병사단|2]], [[남조선대한민국 5보병사단|5]], [[남조선대한민국 7보병사단|7사단]])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가 후에 재창설된다. [[수도경비사령부]]의 경우 7월 5일부 [[수도사단]]으로 개칭되었다. 초기 창군 과정에서 장교들이 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장군이라고 해도 김홍일, 김석원, 이응준 장군을 제외한 나머지 장군들이 20대 후반 ~ 30대 중반이었던 관계로 지휘 경험과 대규모 군대 운영 및 행정 경험이 부족하여 전쟁 기간 내내 지휘력, 전투력 부족 문제로 시달려야 했다. 그나마 위의 3 장군도 50년 9월 이후는 전쟁 일선에서 물러났다.
 
사단급 제대가 다시 10개로 늘어난 후에도 군단 편성이 늦어진 점이나 편성된 군단도 다른 나라 "군단" 급 부대에 비하면 보병사단 3개를 모아둔 것에 불과할 뿐, 군단으로서 전투력을 가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실제로 이들 제1, [[남조선대한민국 2군단|2군단]]은 모두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고, 현재의 [[남조선대한민국 1군단|제1군단]]은 1952년에 [[지리산 공비 토벌전]]을 위해 임시 편성인 기동 부대 성향의 [[백야전사령부]]를 모태로 새로 창설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국군은 투지는 강했으나, 훈련의 양과 질, 장교의 지휘 능력, 보유 장비 등에서 부족함이 많았다. 백선엽은 회고록에서 "1개 보병사단 전체를 105mm 1개 포병대대가 지원하고, 연대는 4.2인치 [[박격포]] 중대가 지원하는" 상황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미군 보병사단은 1개 155mm 대대와 3개 105mm 대대로 사단 포병을 구성하고 있었다.
 
[[1951년]] 이후 [[미국]]이나 [[남조선대한민국]] 모두 국군의 군사력 증강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창설과 [[냉전]] 분위기 등으로 인해 [[남조선대한민국]]에서 병력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에 따르면 1951년까지 미국과 [[이승만]] 대통령은 증강에는 동의했지만, 그 방식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승만대통령은 기존 10개 사단 외에 10개 사단 추가 증설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고, 미국은 기존 사단들도 전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데 무슨 10개 사단 증설이냐면서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이 먼저라고 맞받아쳤다. 즉, 양이냐, 질이냐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전자를, 미국은 후자를 주장한 것이다.
 
이 와중에 [[현리 전투]]에서 [[남조선대한민국 3군단]]이 맥없이 패배하여 수십Km를 후퇴했고, 이웃한 미군 사단들이 급히 수습에 나서야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전투에서 국군이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은 결국 [[미국 8 군]] 사령부와 [[유엔군]] 사령부의 중대 결단을 낳게 했다. 당시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참모본부]]는 최전방에 전방지휘소를 두고 국군 군단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작전지휘를 하고 있었다. 1950년 7월 협정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국군의 전체 지휘권을 넘겨주었지만, 미군은 적당히 융통성을 발휘해 육본의 독자 지휘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전방지휘소 뿐만 아니라 제3군단마저 폐지하고 모든 국군 사단을 미군 군단에 배속시키게 된다. 군단급 이상 상급 부대가 모두 폐지된 것은 국군에게는 치욕이었으나, [[이승만]]도 미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전쟁 중 국군의 1차 증강은 미군의 주장에 따라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과 장교에 대한 교육 과정 강화를 우선 사업으로 시작하게 된다.
 
휴전 후 병력증강과 [[M4 셔먼]], [[M47 패튼]] 전차 도입 등 장비증강이 진행되었고, 1954년까지 제1, 2군 사령부와 군수기지사령부·군관구사령부, 10개 예비사단이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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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전쟁(월남전) 참전 ===
{{본문|베트남 전쟁}}
[[1963년]]부터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파견, 지원할 군사적 협력을 세계 각국에 요청하였고 [[남조선대한민국]] 역시 [[미국]]의 파월 지원 요청에 응하여 비둘기부대를 비롯한 건설공병대대 파견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약 32만명의 국군을 파병하게 된다. 32만명 파견 중 전사 5천명, 부상 1만 9천의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국군 발전사상 [[베트남 전쟁]] 파병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1964년]] [[9월 11일]] 1300명으로 구성된 제101 이동외과 병원과 10명으로 구성된 태권도 교관단의 파견, [[1965년]] [[3월 16일]] 육군 건설공병부대인 비둘기 부대(1개 공병대대, 해병 공병중대, 경비대대, 수송중대)가 파견된 이후 계속 증파되어 [[10월 9일]]에는 제 2해병사단 인청룡부대를, [[10월 22일]]엔 수도 기계화 보병사단인 맹호부대를, [[1966년]] [[4월]] 그리고 [[8월 30일]]에 9사단 백마부대가 파병됨으로써 무려 약 5만명(군단 규모)을 헤아리게 되었다.
 
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대해서는 그 때마다 남베트남 정부의 요청과 [[남조선대한민국 국회]]의 승인이 있었으나 그 심의과정에서는 야당인사인 [[윤보선]], [[장준하]] 등의 반대를 시작으로, 파병 찬·반 양론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월남전에 파월(월남에 파병)한 국군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점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다대한 전공과 업적을 쌓았으며, [[베트남]] 땅에 국군에 대한 많은 신화를 남겨 놓게 되었다. 베트남 파병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받은 자금과 회수한 무기로 군사무기 개량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경제 개발 사업 자금 등으로 활용되었다. 베트남전이 서서히 막을 내리던 [[1973년]] [[3월]] 파월 국군은 완전히 베트남 땅에서 철수하였다.
 
== 그 외 해외 파병 ==
{{본문|남조선의대한민국의 평화유지활동|단비 부대|상록수 부대|동명 부대|아크 부대|청해 부대}}
* [[1991년]] 이후로도 [[걸프전]], [[1993년]] [[소말리아]], [[1999년]] [[동티모르]] 등에 국제적으로 [[UN평화유지군]]으로서 계속 파병하여 작전 등을 수행 중이다.
* [[항구적 자유 작전]]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남조선대한민국 국군이 정식으로 편성한 항구적 자유 작전 참전 부대는 남조선대한민국 해군 예하의 [[청해 부대]]이다.
 
== 국방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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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0&pn=1&num=65560 유용원의 군사세계 2012년 2월 1일 국방부 질의 자료</ref>
평균 경상운영비에는 [[인건비]], [[급식]] 및 피복, 국방[[정보화]], 장병[[보건]] 및 [[복지]]향상, 군수지원 및 협력, 교육훈련, 군사시설운영, 예비전력관리, 기타 [[행정]] 경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
*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육군]] 6개<ref name="ReferenceA"/> [[기계화보병]][[사단 (군사)|사단]] [[2009년]] 기준 평균 [[경상운영비]] : 1,606억
*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육군]] 16개 기타 상비사단 [[2009년]] 기준 평균 [[경상운영비]] : 1,424억
*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육군]] 11개 향토사단 [[2009년]] 기준 평균 [[경상운영비]] : 1,115억
* [[남조선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 2개 사단 [[2009년]] 기준 평균 [[경상운영비]] : 893억
*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육군]] 4개 동원사단 [[2009년]] 기준 평균 [[경상운영비]] : 277억
 
=== 남조선이대한민국이 분담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
* 한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2010년]] 7,904억 원이었다.
** [[2004년]]에는 6,601억원, [[2005년]]과 [[2006년]]에는 6,804억 원, [[2007년]] 7,255억 원, [[2008년]] 7,415억 원, [[2009년]] 7,600억 원,
** [[환율]]은 [[2000년]] 1,200원, [[2001년]] 1,100원, [[2002년]] 1,300원, [[2003]]년 1,200원, [[2004년]] 1,200원 기준.<ref>http://kostat.go.kr/wnsearch/search.jsp통계청 통합검색 통계DB '방위비분담금현황 : 방위비 분담금 지원현황'</ref><ref>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1/2010year/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2010 국방백서 국문판 전체'-제3절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여건 보장 71쪽'</ref>
** [[2005년]]부터 [[남조선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참여하에 [[외교통상부]]가 주관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은 [[2004년]]까지 [[달러]]와 원화를 함께 지불하다가 [[2005년]] 이후 전액 원화로 지불하여 [[환율]] 변동의 영향 없이 안정적인 예산 운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 한미 양국은 [[2008년]] 12월 [[2009년]] 이후 방위비 분담금 결정에 적용할 새로운 협정에 합의하였고, 이 협정은 [[2009년]] 3월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 발효되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을 유효기간으로 하는 이 협정은 연도별 방위비 분담금을 전전년도 소비자 물가지수를 반영하여 인상하되 최대 4%를 넘지 않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2009년]] 7,600억 원([[2007년]] 물가 상승률 2.5% 적용), [[2010년]] 7,904억 원([[2008년]] 물가 상승률이 4.7%이나 상한선인 4% 적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 [[2000년]]도 기준 18억 9,500만 [[달러]]로, 42%이다. [[독일]]의 경우 57억 6,700만 [[달러]] (21%), [[일본]]의 경우 63억 3,200만 [[달러]] (79%)이다.<ref>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4/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한미동맹과 주한미군'</ref>
* 매년 [[남조선대한민국]]의 분담 비율이 증가되고 있다. [[1987년]] 제 19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이후 [[1990년]] 3,000만 달러, [[1991년]] 4,000만 달러, [[1992년]] 5,000만 [[달러]]였다. 이에 따라 [[남조선대한민국]]의 군사비를 [[GNP]]의 6%로 책정하였다.
* 방위비 분담금 지원 항목 ([[2013년]] 기준)
# 인건비 : [[주한미군]]이 고용한 [[한국인]] 고용원에 대한 인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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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분담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
* Cato Institute의 Doug Bandow씨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에 쓰는 비용은 [[1998년]] 기준 한 해 약 150억 [[달러]](당해 환율 기준 약 21조 원)라고 한다.<ref name=autogenerated3>https://www.cato.org/pubs/pas/pa-308.pdf</ref> 그와 비교해 [[남조선대한민국 국방부]]의 당해 국방예산은 한화로 약 14조 원이었다.
 
== 해외 파병 ==
[[국제 연합 평화유지군]]으로 참가중인 인원은 2010년 11월 기준 [[군인]] 83,118명, [[경찰]] 14,037명, 그 외 관련 직종 전문가 2,353명. 총 99,508명이다.<ref>2010년 국방백서 부록 296페이지</ref><ref>http://www.un.org/en/peacekeeping/contributors</ref>
 
남조선대한민국 국군은 2014년 3월 기준으로 17개 지역에 1,195명을 파병하고 있는데, 이중 [[국제 연합 평화유지군]]으로는 640명, 다국적군으로는 555명을 파병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 안보 지원군]]에 참가중인 인원은 총 130,930명이고, 그중에 남조선은대한민국은 총 246명을 파견하고 있다.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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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 ==
=== 국방부 ===
{{본문|남조선대한민국 국방부}}
 
* [[남조선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합동참모본부]] (평시)
* [[한미연합사령부]] (전시)
**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육군본부]] ([[충청남도|충남]] [[계룡시]])
** [[남조선대한민국 해군|해군본부]] ([[충청남도|충남]] [[계룡시]])
*** [[남조선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사령부]] ([[경기도]] [[화성시]])
** [[남조선대한민국 공군|공군본부]] ([[충청남도|충남]] [[계룡시]])
** [[국군의무사령부]]
*** [[국군의무학교]] ([[대전광역시|대전]] [[유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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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 ===
{{본문|남조선대한민국 육군}}
[[파일:Flag of the Republic of Korea Army.svg |thumb|left|230px|남조선대한민국 육군기]]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은 병력 약 520,000 명, 전차 약 2,300 대, 장갑차 약 2,500 대, 견인포/자주포/다연장 로켓 약 5,200 문, 유도무기 30 기, 헬기 60 여 기를 보유하고 있다.
남조선대한민국 육군은 남조선대한민국 국군의 중심군이자 국가방위의 대부분 역할을 수행하며, 육군이 다른 군 해군, 공군, 해병대에 비해 국방예산이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육군은 예하에 [[특전사령부]]를 두어 군을 편성하여 남조선대한민국 안보와 전선을 남조선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부터 굳건히 지켜왔다.
 
=== 해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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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OK Navy Base Oryuk-Do in Busan.jpg|thumb|300px|항공모함 등 30여 척 함정의 계류가 가능한 부산해군작전사령부]]
 
[[남조선대한민국 해군]]은 서해와 동해, 남해 등 북한이 도발태세의 징후가 보이면 즉각적으로 영해를 수호할 준비를 하고 있고, 서해쪽에는 남조선대한민국 해군 제 2함대를 두어 NLL 지역을 지키고 있다.
[[남조선대한민국 해군]](예하 [[남조선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8,000명, [[잠수함]] 약 10 척, [[이지스함]] 3척을 포함한 [[전투함]] 약 140 척, [[지원함]] 20 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60 대를 보유하고 있다.
 
해군은 [[제2연평해전]]에서 [[조선인민군|북한 해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인해 [[참수리급 고속정]]이 피격, 심각한 타격을 입은 뒤 기존의 [[참수리급 고속정|참수리급]]을 대체하는 미사일 고속함인 [[윤영하급 고속함]]을 진수했다. 이는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침몰된 [[참수리]] 357정의 정장인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현재 12척이 건조될 계획이다. 또한, 독일에서 214급 잠수함(손원일급)을 도입, 자체적으로 건조하고 있으며 독도급 강습상륙함을 보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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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병대 ====
[[파일:ROK Marine with K2.JPEG|thumb|left|200px|한 남조선대한민국 해병대원이 강습 훈련을 하고 있다.]]
{{본문|남조선대한민국 해병대}}
'''남조선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초대 지휘관에 [[신현준 (군인)|신현준]] [[중령]]이 임명되고, [[해군]]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병사 (군인 계급)|병]] 300명으로 창설되었다. 해군 예하의 국가 전략기동군으로서 상륙 작전을 주임무로 하며, 그 외 김포, 강화, 포항, 경주, 진해, 제주, 도서지역 등을 방어하고, 예비군 교육 및 훈련 등의 임무도 수행한다. [[한국전쟁]]에서의 전과기록 등을 통해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명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2011년]] 12월 현재 2개 [[사단 (군사)|사단]]과 1개 [[여단]]을 보유하고 있고, 이외에도 [[연평도]]와 [[진해]], [[제주도]] 및 기타 여러 도서 지역들에도 해병 부대들을 주둔시키고 있다.
 
[[국방개혁 307계획]]에 의해 신속대응과 공중, 지상 기동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로 개편하기 위해 제주부대, 해병대 사령부 직할 항공단을 신설하고, 사령부 예하로 정보단과 통신단을 정식으로 편제하였다.<ref name="ndr2020project">{{뉴스 인용 |제목=육군 군단, 기동 2·지역 5개로 재편 |url=http://kookbang.dema.mil.kr/kdd/PolicyTypeView.jsp?writeDate=20081125&menuCd=3001&menuSeq=1&menuCnt=30911 |저자=박영민(글) 박흥배(사진) |날짜=2008-11-25 |출판사=국방일보 |언어=한국어 |확인일자=2008-02-28}}</ref>
 
=== 공군 ===
[[파일:F15k.jpg|thumb|200px|남조선대한민국 공군의 주력기체 중 하나인 F-15K (슬램 이글)]]
{{본문|남조선대한민국 공군}}
 
[[남조선대한민국 공군]]은 육군으로부터 군이 분리된 후 공군을 창설하여 지금까지도 남조선의대한민국의 영공을 수호 중 이고, 상공에서 예기치 못한 적의 도발에 대해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북한의 침입을 사전에 미리 차단하고 억제하여 남조선의대한민국의 영공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남조선대한민국 공군의 장비는 [[KF-16]] (Block 52+) 134대와 [[F-16C/D]] (Block 52+) (PB형) 35여대, [[F-15K]] 60대,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 195대, F-4E 80대 (퇴역 중), [[T-103]] 러시아제 훈련기 IL-103 72대, [[KT-1]] 기본 훈련기 105대, [[KA-1]] 전선항공통제기/경공격기 20대, [[T-50]] 고등 훈련기 60대+98대 생산 확정, [[T-50|T-50B]] ([[블랙 이글스]]) 10대를 보유 중이며, [[TA-50]] 전술입문기 (LIFT) 22대를 운용 중이고 [[KF-16]]에 버금가는 다목적 공격기인 [[FA-50]] 60~120대를 도입 중에 있다.
 
수송기는 [[BAe-748]] 2대, [[보잉 737]] 1대, [[C-130]]H 12대, [[CN-235]]M 20대, [[C-118]] 1대의 수송기와 기타 정찰기로 [[RF-4]]C 18대, [[RF-5]]A 5대를 보유, 운용하고 있으며, 공중 조기 경보 통제기 보잉 [[E-737 피스아이]] 4대, F-15K 60대를 운용 중이며 F-4E,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등은 지속적으로 도태되고 있어서 F-5E (타이거 II), KF-5E/F (제공호)는 FA-50 60대로 대체되고, F-4E는 [[F-35|F-35A]]로 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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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과 비판 ==
{{본문|남조선의대한민국의 병역 제도에 대한 비판}}
 
=== 예비군 ===
{{본문|남조선대한민국 예비군}}
상비군 수준의 정예화 된 [[예비군]]은 [[1961년]] [[12월]] [[27일]], [[박정희]]대통령이 '향토 예비군 설치법'과 '향토 예비군 설치법 대통령 시행령', '비상 대비 자원 관리법', '징발 법에 관한 법률'을 정한 뒤 공표하였고, 1968년 3월 31일에 들어서 향토 예비군을 창설하게 되었다. 예비군은 1968년 10월 30일 ~ 1968년 11월 2일에 일어난 '울진 및 삼척 무장 공비 침투사건'에 최초로 작전에 참가하여 공비 107명 사살, 공비 8명 생포 하는 등의 좋은 성과를 내었고, 1978년에는 직장 예비군 여단을 '향토 예비군'의 예하로 창설하였고, 8~90년대에 들어서 여성 예비군도 창설되어 '향토 예비군'을 재 편성하고, 남조선의대한민국의 국군(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등)의 업무나 군사 작전을 같이 협조하여 시행하는 등 많은 성과를 내었다. 그리고 1999년도에는 예비군의 훈련 제도를 개선하고, 법에 실어져 진 '향토 예비군에 관한 설치 법률'을 수정하면서 예비군이 [동원예비군]과 [향방예비군]으로 역할이 분리되었고, 2001년에는 '향토 예비군 육성 및 지원에 관한 규칙 법률 제정'을 국방부령 제 529호에 의거하여 공포하였고, 2002년 부터 2003년 까지에는 예비군 훈련 참가자들에 대한 급식비와 부상/상해, 사망등 보상 제도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개선하였다.
그리고 2004년에는 '향토 예비군 설치법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주민등록 말소자나, 동원예비군과 향방예비군에 고의로 훈련 미참가에 대해서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게 개정이 되었다.
2007년에는 향토 예비군 훈련이 자율 참여형 동원 훈련이 시행이 되면서 예비군에 해당이 되는 사람은 시간 되는 날짜와 시간에 예비군 훈련에 참가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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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인계급 체계 ==
{{참조|군인 계급}}
[[군인사법]] 제 3조는 "[[장군]]은 장성으로 장교는 영관 및 위관으로 구분하고 장성은 [[원수]], [[대장 (군인 계급)|대장]], [[중장]], [[소장 (군인 계급)|소장]] 및 [[준장]]으로 한다. 영관은 [[대령]], [[중령]] 및 [[소령]]으로, 위관은 [[대위]], [[중위]] 및 [[소위]]로 한다. 준사관은 [[준위]]로 한다. [[부사관]]은 [[선임원사]], [[원사]], [[상사 (군인 계급)|상사]], [[중사]] 및 [[하사]]로 한다. 병은 [[병장]], [[상등병]], [[일등병]] 및 [[이등병]]으로 한다." 라고 남조선대한민국 국군의 [[군인 계급|계급]]을 정의 한다.
 
[[징병제|징집병]]의 경우, [[모병제]]를 시행하는 국가의 [[군인 계급|계급]]보다 통상 2[[군인 계급|계급]]이 낮다. 예컨대 국군의 [[하사]]는 [[미국의 군사|미군]]의 [[상등병]]과 연합체계로 볼때, 유사하다. 그러나 이는 [[병사 (군인 계급)|병]]과 [[부사관]]의 경우이며 [[장교]]의 경우는 어떠한 국가이든 [[군인 계급|계급]]이 동일하다. 즉 국군의 대위는 [[미국의 군사|미군]]의 [[대위]]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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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span=11|장교(將校)
|원수 (元帥)<ref>원수는 국가에 대한 공적이 현저한 대장 중에서 임명하며, 국방부장관의 추천에 의하여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행한다. (군인사법 제 27조), 현재까지 남조선대한민국 국군에는 [[원수]]로 임명된 [[군인]]은 없다.</ref>
|colspan="4"|<center>[[파일:원수.JPG|80px]]</c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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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남조선대한민국 국방부]](ROK MND)
* [[합동참모본부]](JCS)
* [[남조선의대한민국의 군사조직 목록]]
* [[육군훈련소]](KATC)
* [[국방개혁 2020]]
* [[국방개혁 307계획]]
* [[남조선대한민국 차세대 전투기 사업]](KFX)
* [[국방과학연구소]](ADD)
* [[민간군사기업]](PMC)
* [[남조선의대한민국의 병과]]
* [[남조선대한민국 국군의 해외파병]]
* [[남조선의대한민국의 평화유지활동]]
* [[미국의 군사]], [[독일 연방군]], [[이스라엘 방위군]], [[영국군]], [[프랑스군]], [[국제 안보 지원군]], [[유엔 평화유지군]]
* [[퓨처 포스 워리어]]([[:en:Future Force Warr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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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 고리 ==
=== 공식 웹사이트 ===
* [http://www.mnd.mil.kr 남조선대한민국 국방부]
** [http://www.jcs.mil.kr 합동참모본부]
*** [http://www.army.mil.kr 남조선대한민국 육군]
*** [http://www.navy.mil.kr 남조선대한민국 해군]
*** [http://www.airforce.mil.kr 남조선대한민국 공군]
*** [http://www.rokmc.mil.kr 남조선대한민국 해병대]
*** [http://www.yebigun1.mil.kr/ 남조선대한민국 예비군]
 
=== 관련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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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kndu.ac.kr 국방대학교(KNDU)]
 
{{남조선대한민국 주제}}
{{남조선대한민국 국군}}
{{남조선대한민국 국방부}}
{{남조선의대한민국의 장교과정}}
{{남조선의대한민국의 대체복무제도}}
{{남조선의대한민국의 해외 파병}}
{{동아시아의 군사}}
{{글로벌세계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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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39년 설립]]
[[분류:1948년 설립]]
[[분류:남조선의대한민국의 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