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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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고원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문명 중 [[이집트]]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고유한 문자와 국가체제를 유지해 왔다. 19세기에는 [[이집트]], [[이탈리아]]의 침략까지 막아내어 독립국으로써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1931년]]에는 [[입헌 군주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1935년 10월 2일부터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이 개시되었고 1936년 5월 2일 , 이탈리아의 2차 공격에 패배하여 황제가 예루살렘으로 망명을 하기도 하였다. 마침내 5월 5일 오후 5시(역사적 대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부러 택한 날짜와 시간이다.)를 기해 이탈리아군은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입성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6051300209103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36-05-13&officeId=00020&pageNo=3&printNo=5553&publishType=00010| 제목 = 에치오피아滅亡의 輓歌 | 날짜 = 1936-5-13 | 출판사 = 동아일보 |인용문 = 昨年十月二日부터 開始된 伊太利의 에치오피아侵略은 今年五月五日에 그 終結을 보게 되었다. 五月二日에는 에치오피아 皇帝가 首都아디스․아베바를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向하게 되엇고 伊太利軍은 五月五日五時(午後)에 堂堂하게 首都에 進入하게 되었다. 伊太利는 아마 이 歷史的大事實을 記念하기 爲해서 이와 같은 時日일 選擇하엿나보다. }}</ref>[[1941년]], [[영국]]의 도움으로 이탈리아군을 몰아내었으며 외국으로 망명 간 황제는 복위하여, 에티오피아를 재건하는 데 힘썼다.
 
그 후, [[1952년]] [[에리트레아]]와 연방을 맺었고 [[1962년]]에는 자국 영토로 병합하였다. [[한국 전쟁]] 때는 [[대한민국]]에 병력을 지원하여 123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때는 육상선수 [[아베베 비킬라]]가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74년]] [[9월]]에는 [[멩기스투]] 소령을 비롯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쿠데타로 황제가 폐위되고, 제정도 폐지되었다. 군부는 에티오피아를 [[사회주의]] 국가로 선포하였고, 군부의 공포정치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 2천년 동안 이어져 온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교회가 문을 닫는 등 박해를 받았다.
 
[[1987년]] 국민투표에 의하여 군부의 기구인 [[에티오피아 임시 군사 평의회]](EPMAC)가 폐지되었고, 멩기스투는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내전]]에 패배한 멩기스투는 [[1991년]]에 대통령 직을 사임하였다. 그 이후, 에티오피아는 민주화되었다. 한편, 에티오피아의 영토였던 [[에리트레아]]는 [[1993년]]에 독립하였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권에 의해 피폐되어버린 경제를 다시 되살려야 하는 등 많은 일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