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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기 ====
[[1622년]](광해군 14년) 집안의 권고로 감시(監試)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그 뒤 [[1623년]] [[인조 반정]]이 벌어졌으나 그는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1624년]] [[5월]] 부친상을 당하였고,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이 터지자 모친과 가족들을 데리고 [[충청북도]] [[괴산군|괴산]]에 피신해 있다가 [[1628년]] [[4월]] [[안성군|안성]]으로 되돌아왔다. [[1630년]] 다시 감시에 응시하여 합격하였고, [[1636년]] [[병자호란]] 때는 형인 [[홍우정]]을 따라 모친과 함께 [[봉화]]로 피신하였다가 [[1642년]] 다시 안성으로 되돌아왔다.
 
이후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있다가 과거에 응시하라는 가족들과 친지들의 권고로 [[1645년]](인조 23) 왕세자의 세자책봉을 축하하는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응시하여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권지를 거쳐 [[시강원]] 설서(侍講院說書)가 되었다. 1645년 [[강빈 옥사]]에 연루, 체포되어 삭직 당하였으나 곧 복관되었다. [[1646년]]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