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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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살이 편 ===
==== 결혼 ====
출장 [[미용사]]로 활약하던 오싱은 자신에게 가가야 [[쌀]]도매점 후계자로서의 삶을 강요하는 부모님의 억압을 피해,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못한 다른 여급들이 "여학교도 다녔고, [[그림]]까지 그린다니 우리와는 다르다"며 부러워하는 [[인텔리]] 웨이트리스<ref>가요는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학교 공부를 그만두고,재주와 흥미에 맞는 [[서양화]] 그리기에 몰두하지만, 결혼하여 가가야 쌀도매점 후계자가 되기 바라는 [[할머니]]와 [[부모]]님의 강요로 꿈을 이루지 못한다.</ref>로 일하는 가요({{llang|ja|八代加代}})와 후에 그의 남편이 되는 [[양복점]] 사장 다노쿠라 류조({{llang|ja|田倉竜三}})를 만난다. 오싱의 설득으로 집에 돌아간 가요는 아들이 없으면 [[데릴사위]]를 두어서 가문의 대를 잇는 일본의 전통에 따라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마사오와 결혼하고, 오싱도 순수한 성정의 다노쿠라와 [[사찰]]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한 오싱은 남편을 어려서부터 보살펴온 할아범의 도움<ref> 할아범은 출신이 비천한 오싱을 처음에는 '아씨'가 아니라 '오싱상'이라고 부르며 편견을 가지고 대하지만, 오싱의 착한 마음씨와 [[요리]], [[다도]], [[주산]], [[회계]] 모두 수준급인 다재다능함에 감탄, '아씨'라고 부르면서 존경한다. 그리고 다노쿠라가 [[아동복]] 가게를 개업하자 가게일을 봐주면서 사업을 돕는다.</ref>과 [[상인]]으로서의 안목과 재능<ref>오싱은 양복점영업 시절, 남편의 거래처가 무리한 사업확장과 세계경제대공황으로 부도나자, 과감하게 거래처에 가서 납품한 [[양복]]원단을 갖고와서 시장에서 장사하여 손해를 최소화하는 지혜를 보인다.</ref>그리고 열정<ref>오싱과 다노쿠라의 아동복가게는 우연히 오싱이 만든 [[옷]]을 본 미노미야 백화점 [[머천다이저]]들의 거래제안으로 미노미야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게 되고, [[재봉사]]들을 고용할 정도로 번창한다. 그런데 재봉사중 한 사람이 [[감기]]로 일을 할 수 없자, 오싱은 그 재봉사 아가씨를 대신해서 재봉틀을 돌려 납품에 지장이 없게 하였다.</ref>으로 남편의 [[아동복]] 사업을 돕는다. 덕분에 사업은 빚을 내서 아동복 [[공장]]을 지을 정도로 번창했지만,[[1923년]] [[9월]] [[간토 대지진]]의 발생으로 몰락하고 만다. 그것도 스승인 다카 원장과 미용사 시절 단골손님이었던 카페 웨이트리스 친구들을 초대한 공장개업식날,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부랴부랴 집에 돌아오니 할아범은 그해 태어난 아들 다노쿠라 유({{llang|ja|田倉雄}})를 안은 채 시체로 발견되고, 집은 잿더미가 되었다.
 
==== 시집살이 ====
결국 빈털털이가빈털터리가 되어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 사가로 쫓겨온 오싱은 자신을 여종취급하는 시어머니 밑에서 혹독하게 고생고생하였고, [[임신]]하고 있던 딸을 [[유산]]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남편도 그녀에게 무심하기는 마찬가지여서 혹독한 시어머니의 학대를 피해서 달아나려다가 발각된 아내를 위로하고 돌보기는커녕, 심하게 구타,구타하여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하는 일까지 벌어진다벌어졌다. 혹독한 시집살이로 인해 [[임신]]하고 있던 딸을 [[유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오싱은 그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하지 않게 된다.
 
=== 유랑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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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선장사 ====
하지만 거친 뱃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고단한 모습을 본 고우타의 배려로 [[어촌]] 이새의 히사({{llang|ja|神山}})아줌마댁에서 [[생선]]장수를 시작한다.
덕분에 유랑을 끝내고 정착할 수 있게 된 오싱은 [[도매상]]인 히사 아줌마에게 [[생선]]을 사서 장사를 시작한다. 그는 상술<REF>무료로 생선을 나누어주어 관심을 끈뒤,다른 상인들보다 싼 값에 판매하는 상술로 오싱은 마을 사람들의 인기를 받는다. 당연히 경쟁관계의 생선장수 아줌마들이 격분하여 [[집]]에 찾아오지만, 지는 게 싫으면 상술을 개발하라는 히사 아줌마의 반박에 말문이 막혀 돌아간다. 뿐만 아니라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해주는 요리대행서비스까지 개발하는등 오싱은 뛰어난 [[영업]]방식을 선보인다.</REF>과 성실함 그리고 해박한 생선지식<REF>오싱은 가족 수와 가족구성원 연령에 맞춘 생선판매로 신용을 얻는다.</REF>
으로 마을사람들의 신용을 얻는다. 하지만 더 큰 기쁨은 [[간척]]사업이 [[천재지변]]으로 실패한 남편과 다시 새 출발을 한 것이었다. 남편은 [[만주]]로 떠나려고 했다가 아내가 고생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 생선장사에 동참했고, 오싱이 그동안 모은 돈으로 생선가게를 열자 열심히 일한다. 오싱은 한때 [[도쿄]]의 알아주는 멋쟁이였던 남편이 장사를 배워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든든함과 행복을 느낀다.
 
=== 통곡 편 ===
하지만 슬픈 일들이 그녀의 행복을 질시하고 있었다.
평생 고생만 한 어머니를 [[백혈병]]으로 잃고, 얼마 후 [[불경기]]로 가가야가 망한후 [[매춘부]]로 전락, 고생하다가 [[질병|병]]으로 죽은 가요의 아들 노소미를 입양했고,입양했다. 평생 고생만 농민운동을 어머니도하던 [[백혈병]]으로고우타가 가요의 묘 앞에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몇 년 후 사상전향을 하고 죽었다출옥하였다. 더구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큰아들 유가 [[필리핀]]에서 전사한 사건, 이에 상처받은 수양딸 하스코({{llang|ja|田倉初子}})가 가출하는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슬픔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에 [[애국주의]]에 근거하여, 가담한 잘못에 죄책감을 느낀 남편의 [[자살]]이었다. 그녀는 꿋꿋히 슬픔을 참으면서 작은 아들 히토시, 엄마 오싱의 간곡한 설득으로 집에 돌아온 수양딸 하스코 그리고 딸 데이와 함께 식료품가게를 꾸려나가 여러 지점들을 둘 정도가 된다. 죽은 큰 아들 유를 대신해서 장남역할을 성실하게 해오던 히토시({{llang|ja|田倉仁}})도 부자집딸 미치코와 결혼한다. 오싱은 결혼할 남자의 누나인 하쓰코가 자신을 대접하느라 바쁜데도 전혀 돕지 않을 만큼 속없고 예의도 없는 철부지 아가씨 미치코가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지만, 아들이 원하니까 [[결혼]]을 허락한다. 이때가 패전으로 잿더미가 된 일본[[경제]]가 성장한 1950년대였다. 하지만 오싱의 우려대로 미치코는 가출까지 할 정도로 시어머니의 속을 썩힌다썩인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아들 노소미와 딸 하스코가 흥미와 적성에 맞는 [[도예|도공]]과 [[수예품]]가게주인의 길을 걸으면서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완결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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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은 [[청조사]]에서 [[1984년]] [[3월 1일]] 6권으로 출판하였으며, [[2002년]] 6권,[[2006년]] 3권으로 재출간되었다. [[2002년]],[[2003년]] [[어린이]] 독자들을 대상으로 일본 [[군국주의]]나 [[매춘]]처럼 어린이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내용을 각색한 [[만화]]와 [[동화]]로도 제작하였다.<ref>청조사에서 출판한 동화《어린이를 위한 오싱》에서는 오싱의 친구이자 옛 상전인 가요가 매춘부로 혹사당하다가 급사하는 내용이 나와 있지 않으며, 오싱이 가요의 장례를 치른뒤 아들 노소미를 데려오는 내용도 가요가 고아원에 맡긴 노소미를 데려오는 내용으로 각색되었다.</ref>번역자는 김균이다.
== 등장인물 ==
=== 오싱의 형제,부모(다니무라 가) ===
* '''사쿠조''':오싱의 부친. 수입의 반을 소작료로 가져가는 지주의 [[착취]]로 인한 가난때문에 아내, 노모, 아이들을 고생시켰다는 죄책감으로 고통받았다. 무식한 사쿠조는 자신을 착취하는 지주를 상대로 [[계급투쟁]]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고마워하는 [[노예]]근성을 갖고 있었다. 이는 [[20세기]] 초 [[일본]]의 대다수 소작인들이 무식하여 착취계급인 지주를 상대로 투쟁할 생각을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오싱도 옛날 일본의 [[소작인]]들은 대부분 무식해서 지주들은 점점 부자가 되는데, 소작인들은 점점 [[가난]]해졌다고 손주 게이에게 말한다. 하지만 아들 쇼지는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이 왜 가난하게 사는지 알고 있어서, 고우타가 [[야마가다 현]]에서 농민운동을 벌이자 열심히 참여한다.
* '''후지''':오싱의 모친. 가난해서 호강시켜주지는 못했어도, 오싱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도록 말없이 응원한다. [[배움]]은 없지만 [[지혜]]로워서 오싱에게 어머니는 의지할 수 있는 분이었다.
* '''하루''':오싱의 언니. 제사공장에서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다가 불과 19세의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 오싱은 언니의 유언으로 미용사가 되기 위해 도쿄로 떠난다.
* '''쇼지''':오싱의 오빠.지주가 소작인을 착취하는 구조적 악으로 인해 가난한 가정환경탓에 여동생인 오싱에게까지 박대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었지만,같이 늙어가는 오싱이 자신과 아내 도라를 이야기도 들어주고 밥도 같이 먹음으로써 돌보자 미안해한다.
* '''나카''':오싱의 할머니. 고생만 하다가 [[병]]으로 죽었다. 며느리 후지와 시어머니 나카의 관계는 엄마와 딸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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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요''':구니에게는 손녀, 미노와 기요타로에게는 큰 딸이다. 가가야의 후계자가 될 몸이라 곱게 자랐다. 집안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던 시대에 일본 여성인권운동가 하라즈카 라이초등의 [[여성해방]]운동가들의 영향으로 [[서양화]]를 배워서 [[화가]]가 되겠다는 자세한 진로설계를 하고,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해변에 나가 그림 공부에 몰두할만큼 독립정신이 강한 여성이다.<ref>“원시 여성은 태양이었다. 진정한 사람이었다. 지금 여성은 달이다. 타인에 의존하여 살고 타인의 빛에 의해 빛나는 병자와 같이 창백한 얼굴의 달이다.” 라는 하라즈카 라이초의 글이 인용되어 있음.</ref> 하지만 그의 진로설계는 후계자를 강요하는 어른들과의 갈등끝에 좌절되어 억지로 [[결혼]]하고, 애정이 없는 결혼생활과 배우자의 무리한 [[주식]]투자에 따른 가가야의 몰락으로 불행하게 살다가, 윤락가에서 [[질병|병]]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그의 아들 노소미는 가요의 친구인 오싱이 고생끝에 키운다. 서양화 화가가 되겠다는 분명한 목적과 이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실제 고우타와 오싱은 가요가 그림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있음을 인정한다.)보수적인 시대 탓에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한,불행한 여성이다.
 
=== 하세가와도쿄의 미용원사람들 ===
 
* '''다카''':하세가와 미용원 원장. [[일본]]의 전통 [[미용]]을 하는 [[미용사]]이다. 오싱이 일을 배우러 온 날 제자들의 우두머리인 도요가 반대하자,오싱의 삶이 달린 문제라면서 받아들인다. 또한 오싱에게는 "솜씨가 안 좋거나 일이 느리더라도 마음이 바르다면 몇 명이라도 제자로 둘 생각이야."라고 말한다. 다카는 밑바닥에서부터 일을 배워나가는 일본의 전통적인 [[직업]]교육방식을 깨고, 영리하고 손재주가 좋은 오싱에게 손님의 머리를 빗겨드리는 빗잡이를 맡기는데, 경쟁관계인 다른 미용사들의 반발로 무산된다. 그래서 전통미용은 익히지 못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는 서양미용을 배워서 출장미용을 나갈정도의 실력을 갖춘다. 이를 본 다른 미용사들이 질투와 시기를 하자, 다카는 방을 구해서 오싱을 독립시킨다. 오싱이 어려울때마다 도와주었다.
* '''리쓰''':다카 원장의 제자. 12세에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오싱이 처음 왔을때는 [[경쟁]]자로 생각해서 멀리했지만, 남을 배려하는 오싱의 자상한 마음에 감동받아서 언니로 따른다. 지진 후 독립하여 자신의 미용원을 차린다.
* '''겡''':본명은 나카자와 겡({{llang|ja|中沢健}}). 데키야의 두목. 원단을 처분하기 위해 무허가로 노점상을 차린 오싱과 싸움이 붙지만 곧 오싱의 배짱에 감탄하여 원단을 팔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후 오싱이 도쿄에 왔을 때마다 도와주었다. 오싱이 사카다에서 밥집 장사를 할 때 진상을 부리던 건달들에게 진기(仁義, 노름꾼·노점상 등이 초대면 때에 행하는 특수한 인사 방식)를 보여주어 화를 면할 수 있었는데 사실 그 진기는 오싱이 도쿄에 있었을 때 겡이 가르쳐 준 것이었다.
* '''소메코''':카페 '아테네'의 종업원. 미용사 시절 오싱이 처음으로 받게 된 손님이다. 처음에는 오싱이 해 준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화를 내면서 돌아갔다가 가게에서 그 머리 모양의 평이 좋아 단골손님이 된다. 류조에게 보낼 편지를 오싱에게 대필을 부탁한 적도 있었고, 이 일이 오싱과 류조가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후에 다른 종업원들과 함께 둘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등 친하게 지냈지만 지진 후 소식이 끊기고 만다.
 
=== 다노쿠라 가(오싱의 남편과 시댁 가족들) ===
=== 시댁어른 ===
* '''기요''':오싱의 시어머니. 혹독하게 시집살이를 시킨다. 그 후 오싱이 홀로 사가를 떠났을 때에도 오싱에게 온 편지를 갈갈이 찢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작은아들 류조와 작은[[며느리]] 오싱이 이세에서 [[생선]]장사를 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에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 '''다이고로''':오싱의 시아버지. 겡 할아범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으며 오싱을 며느리로 인정해서 결혼에 승낙했다. 오싱에게 혹독하게 대하는 아내를 자주 타이른다.
* '''갱할아범겡 할아범''':원래 이름이이름은 이마무라 갱우에몽이며겡에몽({{llang|ja|今村源右衛門}})이며, 애칭으로 할아범이라고 불린다. 오싱의 배우자 류조를 어릴때부터 섬긴 청지기이다. 어른답게 경험과 지혜가 많아서 류조와 오싱이 [[양복]]도매상과 [[아동복]] 가게를 경영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오싱이 배움이 없는 [[소작인]]의 딸인데도 [[주산]](지금은 [[엑셀]]이 [[회계]]에 널리 쓰이지만, 오싱이 [[도쿄]]에서 양복도매상을 하던 [[1923년]]에는 엑셀이 없었다.), [[다도]], [[요리]], [[서예|붓글씨]](오싱이 청년시기였던 20세기초에는 여성이 글을 아는 것이 대단한 것으로 여겨질 만큼, 여성들의 대부분이 글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회계]] 모두 잘 하고, 어릴때부터 고생을 해서 세상물정에 밝다는 좋은 점이 있음을 알고부터는 류조의 배우자로 존중한다. 류조에게 오싱은 과분한 분이기 때문이다.
* '''류조''': 오싱의 배우자. 손님들의 시중을 들어주는 웨이트리스에게도 친절할 만큼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일이 없는 착한 사람이다. 오싱과 연애[[결혼]]을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전쟁]]가담에 죄의식을 느끼고 [[자살]]하기전까지 오싱과 [[양복]]도매상, [[아동복]] 가게, [[생선]]가게를 같이 운영하면서 동고동락한다.
* '''후쿠타로''':류조의 맏형. 집안의 내분에 대해서는 소극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 '''쓰네코''':후쿠타로의 아내. 사가에서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디고 있다. 후에 사가를 떠나는 오싱에게 시어머니의 눈을 피해 아들 유를 빼돌려주고 시어머니가 찢어버린 오싱의 편지를 회수하여 풀칠해서 류조에게 보여주는 등 몰래 오싱을 도와준다.
* '''가메지로''':류조의 둘째형. 육군 장교로, 류조에게 군에 생선을 납품하는 사업을 소개한다.
 
=== 고우타의 가족 ===
* '''고우타''':[[청년]]시절에 [[민중]]운동에 헌신한 [[진보]]적인 지식인이다. [[1930년]]대 군부정권의 [[좌파]](左派)에 대한 혹독한 탄압으로 강제 [[사상전향]]을 한 뒤 나미끼 가의 [[데릴사위]]로 성격이 너그러운 아내 교오코와 [[결혼]]한다. 오싱의 첫 사랑이며, 오싱을 세심하게 돕는다. 고우타의 사촌이모인 히사는 [[조카]]인 고우타가 민중운동에 헌신하느라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한 것이 걱정되지만,오싱은 억압과 [[착취]]를 받는 [[민중]]의 편에 서서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해한다.
* '''히사''':고우타의 사촌이모. [[어부]]들이 새벽에 잡아온 [[생선]]으로 행상들과 거래하는 생선[[도매상]]이다. 고우타의 부탁으로 오싱이 이세에 정착하고 생선장사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덕분에 오싱은 훗날 손자 게이에게 "살 [[집]]이 없었던 비참한 시절"이라고 기억한 방황을 끝내고 이세에 뿌리내려 안정된 삶을 살아간다. 아저씨와 사별한 뒤 냉혹한 세상과 싸워가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여걸(女傑)인 히사 아줌마를 보면서 오싱은 [[상인]]으로서의 경험을 쌓아간다. 또한 히사 아줌마는 아저씨 사이에서 아들 셋만 두었지 딸이 없었기 때문에, 오싱과 그의 아이들을 딸과 손자, 손녀들처럼 돌본다. 실례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후에 군부정권이 발행한 주택구입계약서는 휴지조각이라 전 주인이 집을 도로 찾는 바람에 살 집이 없게 되자 오싱이 처음 온 날처럼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해 주었다.
 
=== 다노쿠라 가(아들과 딸 그리고 며느리) ===
* '''유''':오싱의 장남.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고생하는 모습을 봐 왔으며, 누구보다도 어머니를 생각한다. 한때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하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단념하고 교토의 고등학교로, 그리고 교토제국대학으로 진학한다. [[제2차 세계대전]]때 [[장교]]로 복무하다가 전사전사하였다.
* '''히토시''':오싱의 차남. 욕심이 많고 고객의 니즈(Needs)를 읽어내는 상술로 다노쿠라 상점을 크게 성장시켰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윤리]]에 어긋나든 말든 간에 비열한 방법까지 쓰는 [[우상]]숭배자로 타락하자 그제서야 오싱은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라고 후회한다. 그래서 [[사업]]이 큰 가게가 들어서서 어려워지자 일부러 돕지 않는다. 히토시는 전쟁후에 같이 고생하고 살아온 형제들에 대한 의리로 하쓰코 누나와 노소미의 [[수예]]가게 개점과 [[도예]]사업을 [[가게]]를 구해주고, 상점에 [[도자기]] 매장을 만들어서 돕는다.
* '''데이''':오싱의 막내딸. [[대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실력이 있어도 인정받지 못하는 학력[[차별]]을 경험한 오빠 히토시가 열심히 뒷바라지를 한 덕분에 [[대학교]]까지 다녔다.
* '''하쓰코''': 오싱의 양녀. 1930년대 극심한 [[공황]]으로 일본의 시골에서는 아이들을 [[인신매매]]하는 일이 있었는데, 오싱의 친구인 겡이 마침 그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인신매매로 먹고사는 브로커라고 해도 양심이라는 게 있는 법. 갱이 어린 하쓰코를 차마 술집에 보내지 못하고 고민하자, 눈치빠르게 [[아침]]에 일어나 [[밥]]과 [[된장국]]을 끓이는 하쓰코의 모습에서 고생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어린시절을 본 오싱이 양녀로 들인 것이다. 덕분에 하쓰코는 집안일을 도우면서 [[중학교]]까지 공부했다. 오싱의 장남인 유와는 미래를 약속한 사이였으나, 유가 전사한 뒤 [[미군]]들이 자주 찾는 술집에서 일을 하는 비뚤어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가게일을 접고 자신을 찾아온 엄마 오싱과 엄마의 친구인 갱의 간곡한 설득으로 마음을 바꾸고 이세에 돌아와, 가게 일을 10년간 열심히 도와드렸다. 10년후 중년이 된 하쓰코는 '엄마와 같이 살면서 장사를 배웠으니, 이제는 네 가게를 해야지'라는 엄마의 권유에 따라 자영업자로 독립하는데, 손재주가 좋아서 [[털실]]로 [[옷]]과 [[장식물]]을 만들고 강의도 하는 [[수예]]가게를 연다. 히토시는 처남 다쓰노리와 돌아다니며 누나가 운영할 가게를 알아보는데,다행히 하쓰코 누나가 마음에 들어하는 가게가 나오자 자신의 [[돈]]을 들여서 계약한다. 하쓰코는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히토시에게 미안하니까 자신의 [[통장]]을 주어서 계약하라고 하지만,히토시는 넣어두시라면서 완곡하게 거절한다. [[통장]]에 든 돈은 하쓰코 누나가 혈기왕성한 청년시기에 취직해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었는데도,집안일과 가게일을 열심히 도와서 모은 돈, 그래서 함부로 쓸 수 없는 귀한 돈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쓰코는 가게일과 요리 모두 잘 해서 오싱에게 든든한 자식이고, 성격이 자상하여 집안에 분란이 생길 위험이 있거나 분란이 생기면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 '''노소미''':오싱의 양자. 가가야를 재건하여 [[곡물]]사업을 하기 바라는 어머니와 갈등을 겪다가 그림을 잘 그린 친어머니 가요에게 물려받은 [[예술]]적인 감각을 발휘하여 도예가가 된다. 히토시는 자신의 가게에 도예 매장을 마련해서 노소미의 창작활동을 돕는다. 노소미와 히토시는 어른이 된 후에 하쓰코 누나의 과거에 대해 눈치챘지만, 하쓰코 누나를 [[도덕]]으로 비난하기보다는 전쟁이라는 역사적인 상처로 인해 고통받은 누나에게 연민을 느껴 "누나의 과거를 말하는 것은 누나를 괴롭히는 모욕이야.", "누나에게 잘 해야겠어."라고 말한다. 이를 본 오싱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들들의 속 있음에 저으기 감동한다.
* '''미치코''': 오싱의 큰며느리. 고생을 한 적이 없는 터라 낭만적인 [[결혼]]생활을 꿈꾸지만,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나버린다. [[상인]]답게 빈 틈이 없는 시어머니의 완벽함에 기가 죽어서 낭만적인 결혼생활은커녕 시어머니를 섬기는 일부터 어려움을 겪었던 것. 더구나 히토시도 미치코에게 애정을 갖고 결혼한 게 아니어서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지만, 시어머니와 히토시가 자신을 의지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화해한다.
* '''유리''':오싱의 둘째 며느리. 히토시와의 연애가 히토시의 배반으로 깨진 후에 노소미와 결혼했기 때문에, 시댁어른들과 직접 교류하지는 않는다. [[제빵]][[제과]]기술을 배워서 만든 [[케이크]]를 시어머니께 보내드릴 만큼 마음이 따뜻한 며느리였지만,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게된다. 오싱은 유리를 배반한 히토시를 용서하지 않는다.
* '''다쓰노리''': 오싱의 사위. 히토시와는 해군시절 선,후배 사이였고, 지금은 데이와 결혼하여 다노쿠라 상점을 꾸려나가고 있다. 성격이 착해서 성실하게 가게 일을 도왔던 터라 오싱은 다쓰노리의 노고에 고마워한다.
* '''다케시''':오싱의 큰 손자. 형제로는 두 여동생이 있다. 한때 [[빠칭코]]에 손댈 만큼 방황했지만, 아버지의 사업을 돕는다.
* '''게이''':오싱의 둘째 손자. 노소미와 유리사이의유리 사이의 외아들이다.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다. 오싱의 [[여행]]에 따라다니면서 할머니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살았는지를 깨닫는다. 고향의 옛집을 보려는 할머니의 마음을 읽자마자, [[등산]]실력을 발휘해서 할머니를 등에 매고 눈길을 걸어갈 만큼 씩씩한 청년이다. 이번 여행으로 가가야의 존재를 알게 된 그는 가가야를 부흥시킬 사업가가 될 것을 결심한다.
* '''아카네''':오싱의 큰 손녀. 다노꾸라 상점의 한 직원과 혼담이 오갔으나, 상점이 어려워지자 주변에 이와 같은 상황을 소문내고 회사를 그만두자 무기력한 생활을 한다. 히토시와 미치코가 이혼을 한다고 했을 때 집안일을 모르는 아버지와 함께 살려고 했으며, 나중엔 그만 뒀던 회사까지 다니면서 부모님을 도우려고 한다.
* '''미도리''':오싱의 작은 손녀. 세상물정 모르는 대학생이지만 다노꾸라 상점이 어려워 진 이후 나고야에 있는 대학교를 그만두고 광고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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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부인과 사돈어른 ===
* '''센조''' :오싱의 사돈어른이다. 고집이 세서 오싱과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고생을 많이 한 터라 세상물정에 밝은 사부인에게 더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음을 깨닫고 사부인의 견해를 존중한다. 실제로 분가를 시킬 것이냐,같이 살 것이냐를 놓고 토론하게 되자 "사부인의 말씀대로 가업인 장사를 같이 하려면 응당 같이 살아야 한다."라며 딸과 아내를 설득한다. 또한 딸이 여장부인 시어머니를 어려워해서 가출하자 잘 달래 데리고 온다.
* '''나미에''':오싱의 사부인이다. 시집살이를 호되게 한 터라 딸이 혹시라도 고생할까봐 걱정하는 사부인의 마음을 헤아려 오싱은 며느리에게 집안일을 맡긴다.
 
=== 그 외의 인물 ===
* '''가와무라''':유의 복무시절 전우. 오싱과 하쓰코가 유의 면회를 갔을 때 처음 만났다. 종전 직후, 유의 유품인 일기장을 전해 주었으며 그로부터 몇 년 후 큰 돈을 벌게 되어 오싱에게 아들 대신으로 효도한다는 뜻으로 오싱에게 역전의 땅을 양도하지만, 얼마 후 자신이 운영하던 사채업의 채무자에게 살해당한다. 향년 28세. 오싱과 하쓰코는 친척이 없는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며 전쟁 때문에 돈밖에 믿지 못하게 되었다며 동정한다. 훗날, 양도받은 땅은 오싱의 미래를 개척하게 된다.
 
== TV 드라마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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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노쿠라 하쓰코: 사사키 아이(청년기: 다나카 요시코)
* 야시로 가요: 아즈마 데루미(소녀기: 志喜屋文)
* 八代政男야시로 마사오: 모리 아쓰오. 가요의 남편.
* 야시로 구니: 나가오카 데루코
* 야시로 미노: 고바야시 치토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