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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낭 브로델]]은 그의 저서 《세계의 투시도》에서 페니키아는 주변의 세계와 교류하여 "세계 경제"를 건설한 고대 제국 중 하나라고 지적하였다. 페니키아의 문화와 해양지배력은 기원전 1200년경에서 기원전 800년경에 절정을 이루었다.
 
페니키아의 주요 거점은 [[비블로스]], [[티레]], [[시돈]], [[시미라]], [[아라두스]], [[베리투스]]와 같은 [[도시국가]]였다. [[아마르나 서신]]에는 이 도시들이 모두 거론된다. 페니키아의 특징을 나타내는 유물은 기원전 3천년경의 것까지 거슬로 올라간다.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고 있던 페니키아 도시국가들은 해양을 통해 [[레반트]] 지역과 교류하였으며 많은 자원들을 실어 날랐다. 기원전 1200년경 [[철기시대]]에 접어들자 [[산토리니]] 쯤으로 추정되는 북쪽에서 흉년을 만난 해양인들이 남하하였다. 이들은 [[이집트]], [[히타이트]]와 같은 잘 알려진 고대 국가들을 약화시켰으며 이러한 지배력 공백으로 인해 페니키아의 많은 도시 국가들은 독립적인 권력을 수립하게 되었고 이후 해양지배력을 바탕으로 독립을 유지하였다.
 
페니키아의 권력은 왕, 성직자, 원로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블로스는 도시 국가들 중에 가장 강성하였으며 페니키아의 주요 거점이었다. 페니키아 알파벳 역시 비블로스에서 유래하였다. 기원전 1000년경 티레와 시돈이 발흥하였으며 이들은 머지 않아 페니키아의 [[헤게모니]]를 분점하였다. 티레의 왕 [[히람 1세]](Hiram I, 기원전 969년 - 기원전 936년)은 당대의 가장 강성한 왕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페니키아인은 가나안인이란 이름과 함께 티레인, 시돈인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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