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약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24번째 줄:
1630년(인조 8) 비변사낭청(備邊司郎廳)으로 있을 때, 문무의 재주를 겸비하였다고 추천되어 국서(國書)를 가지고 청나라 심양(瀋陽)에 사행(使行)하였다. 이때 숭명배청(崇明排淸)의 대의(大義)에 입각하여 일을 처리하고 외국의 위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하여 돌아와서 품계가 승진되었다.
 
이와 함께, 금편(金鞭 : 금으로 도금한 말의 채찍)·초구(貂裘 : 담비의 모피로 만든 갑옷)·옥배(玉盃) 등을 하사받았다. 뒤에 평산부사,밀양부사, 경상수군절도사(慶尙水軍節度使)로 임명되어 재직 중에 병을 얻어 64세를 일기로 임소에서 타계했다
1830년년(순조 30년) 오충사 사액과 함께 보성의 오충사(五忠祠)에 제향되었으며, 1862년 (철종13년) 병조참판, 1873년(고종10년) 병조판서로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