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건 컨트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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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토 변화 ==
오리건 컨트리는 원래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이 모두 영유를 주장한 곳이다. 미국은 [[1792년]] [[로버트 그레이]]가 콜롬비아 강을 발견했고 [[루이스-클라크 탐험]]을 기반으로 영유권을 주장했다. 영국은 자국의 콜럼비아 강 탐험에 근거하여 이곳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스페인 또한 그들이 18세기 후반에 태평양을 탐험했던 사실에 근거했다. 러시아의 주장은 [[알래스카]]에서 오리건까지 펼쳐져 있었던 정착촌에 근거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양국의 서쪽, 18세기 북위 42도선을 따라 영토 분할을 주장하고 있었다.
 
[[칠년 전쟁]]의 결과 프랑스의 패배로 프랑스의 주장은 사실상 종료됐다. 스페인은 [[누토카 해협]]의 점령 후에 [[1790년 회담]]은 미국에 북위 42도 이북의 모든 영유권 주장 포기를 규정한 [[1819년]] [[애덤스-오니스 조약]]으로 그 주장을 조금씩 포기했다. [[러시아]]는 [[1824년]] 미국과의 조약과 [[1825년]] 영국과의 각각의 조약으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게 된다.
 
그 사이에 미국과 영국은 [[1818년]] [[앵글로-미국 회담]]에서 북위 49도 따라 서쪽 [[로키산맥]]까지 땅을 양국의 경계로 연장하는데 협의했다. 양국은 로키산맥의 서쪽에서 태평양까지의 땅에 대해 "[[공동통치령|공동의 점유]]"를 하기로 합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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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클라크 탐험]] 후 제데디아 스미스와 짐 벡워스 같이 현재 마운틴 맨으로 알려진 모피 상인들은 [[인디언 길]](Indian Trail)을 따라 로키 산맥에서 캘리포니아와 오리건까지 모피를 찾고 있었다. 이 함정 사냥꾼들은 인디언의 거주지를 다니면서, 그들 대부분은 인디언 여자와 결혼했다.
 
영국의 모피 회사 [[북서 회사]]와 [[허드슨 베이 회사]]는 북쪽에서 아타바스카 고개를 경유하여 오리건 컨트리에 진출했다. 같은 무렵, 존 제이콥 애스터가 퍼시픽 모피 회사를 설립했고, [[1811년]] 오리건 주 아스토리아에 모피 교역소를 건설하고, 미국과 영국의 모피 교역 경쟁의 시대가 이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영미 전쟁 후 허드슨 베이 회사가 태평양 북서부의 모피 교역을 제압했다. [[1813년]], 콜럼비아 강에 영국 군함이 도착하면서 아스토리아 주민들은 그들의 영국 경쟁회사인 퍼시픽 모피 회사 전체를 매도해서 가능한 한 재산 반출하도록 했다. 영국 지배 하에 아스토리아는 포트 조지로 변경되었다.
 
[[1824년]]에 이 지역의 수장으로 임명된 존 맥로린는 지역 본부를 밴쿠버 요새로 이동하였다. 그곳은 [[1846년]] [[오리건 조약]]을 맺을 때까지 태평양 북서부의 실질적인 정치 중심지가 되었다. [[1820년대]], 미국인은 로키 산맥을 넘어 이 땅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1840년대]]에는 [[오리건 길]]을 통해 대규모 이주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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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 고리 ==
{{Commons category위키공용분류|Oregon Country}}
* {{언어고리|en}} [http://gesswhoto.com/events.html 오리건 연표]
* {{언어고리|en}} [http://explorenorth.com/library/history/bl-ruseng1825.htm 영러 회담, 1825] (세인트 피츠버그 조약, 1825)